삶의 흔적들

사랑하는 공주님께

청화산 2007. 5. 22. 11:03

 

 

사랑하는 공주님께

 

5월도 이제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남들처럼 봄나들이 한번 못해준 것이

마음이 걸리는 구나.

넉넉지 못한 살림에 공주의 뒷바라지를 못해 주는 아빠와 엄마
정말 미안하다.

아버지의 봉급으로 살림하기가 빠듯하여 네 엄마는 3월부터 일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일하러 가는 네 엄마를 보고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버지는 힘들었단다.
왜냐면 아버지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일하고 온 네 엄마
다리 아프다며 주물러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표현을 안했지만 네 엄마가 너무

불쌍해 보였단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점점 더 초라해졌단다.

 

어제 아버지는 생각을 많이 했단다.
엄마와 네가 다툰 것을 가지고 그러는 것은 아니란다.
딸과 엄마는 싸우면서 정이 드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기에 좀 심한 것 같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성문을 써오라고 한 것이고.
반성문을 본 순간 아버지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도저히 너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단다.

사랑하는 공주야!
아버지는 아직도 네가 태어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단다.
결혼한 지 1년 11일째 되던 날 사랑하는 공주가 태어났었지.
너를 낳기 하루 전부터 수 십 시간 진통이 있었단다.
아빠가 보기에도 아파하는 네 엄마 얼굴이 떠오른단다.

아빠는 기도했지. 엄마와 아기가 건강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산실 밖에서 기다리는 농암 할머니, 공평 할머니도 안절부절 하며 근심어린

모습으로 기다리던 모습이 선하다.
공주는 그렇게 소중한 집안 어른들의 관심 속에 태어났단다.

병원에서 공평 집으로 올 때 복진 아저씨가 우리 가족을 태워 주었단다.
차 안에서 출산으로 인해 뚱뚱 분 얼굴로 곤히 자고 있는 공주를 바라보면서 네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준 너였기 때문에.

아빠가 쓴 육아일기를 공주가 봤다고 했지. 그래 많이 서운했겠지.

하지만 알아둘 것이 있다.
할머니는 태몽 꿈을 장닭(수탉) 꿈을 꾸었단다.
장닭(수탉)은 남자이니 아마도 남자일거라 생각했겠지.
그런데 공주가 태어난 것이야.
생각과 반대였기 때문에 다소 서운한 것이지 그 외 다른 뜻은 없단다.
나중에 네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 똑 같은 위치에 선다면 아마도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이라 믿는다.
세월은 항상 늦게 사람을 깨우치게 만드는 것이거든.

공주야!
넌 아버지와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란다.
아무렇게 생각하고 아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단다.
공주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흔적을 남겨주기 위하여 아버지와 엄마는 사진을

이틀 동안 정리하였단다.
그만큼 공주는 아버지와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이거든.
그리고 한번 봐라.
집에 있는 사진 중에 우리 공주 사진이 젤 많지.
수종이 사진이 제일 작단다.

아빠는 너의 흔적을 사진으로 정리하면서 우리나라의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했단다.
그러나 아버지는 네가 공부 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데 사람이 정직하지 못하면 그것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도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아버지는 공부하라는 소리보다 책을 읽어라 한 것이다.

 

엄마가 민주와 비교한 것은 별다른 뜻이 없단다.
네가 필요 없는 존재라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란다.
다만, 엄마가 하는 말을 너를 이해시키기 위해 민주와 비교한 것이지 민주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니란다.
다시 말하지만 공주는 우리 집에서 맏이로서, 딸로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는 것 변함이 없다.

그런 존재인데 공주가 한 말은 아버지 가슴을 찌르는구나.
죽는다거나 살기 싫다는 소리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아버지와 엄마의 소중한 사랑으로 태어난 공주인데.......
공주가 없으면 아버지와 엄마의 마음이 편하겠니?

 

엄마가 너를 나무라는 것은 공주가 잘 되라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나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켜 밖에 나가서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은 결국 부모의

잘못으로 돌아온단다.

자식이 똑바로 자랄 수 있도록 옆에서 다듬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란다.
나무도 곧게 자라려면 가지를 쳐주고 해야 곧게 자라거든.
그것이 아버지와 엄마의 의무이며 소명이란다.

네가 행동하는 것에 엄마가 나무라는 것이 기분 나쁠지 모르지.
네가 판단할 때 틀리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
그러나 돌이켜보면 엄마가 사회생활도 많이 했고 경험도 더 많잖아.
엄마는 어릴 때 너와 같은 위치에 있으면서 공평 할머니와 다투기도 하면서 배운 것이야.
지금 공주가 엄마한테 하는 것은 배우는 과정이라고 아버지는 생각한단다.
지금은 공주가 모르지만 어른이 되어서 네가 엄마의 위치에 있을 때면 너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시간은 항상 진실을 늦게 가르쳐주거든.

 

공주야 ! 아빠는 너를 무지하게 좋아하거든.
아빠가 너무 무뚝뚝하고 아빠 맘대로 해서 미안하다.
아빠도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단다.
공주가 아버지 마음 아프게 해도 아버지는 남자라서 잘 견딜 수 있단다.
그러나 네 엄마는 마음이 약하니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네 엄마는 어제 밤에 자다가 울었단다.
공주가 너무 엄마 마음을 몰라주어서 그런지.
아버지는 네 엄마 우는 것 안 좋아하거든.
엄마하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

 

그리고 공주 공부하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지도 않는데 열심히 하는 너를 보면 기분이 좋고 그래.
아버지 어깨에 힘도 으쓱 들어가고.
어디가면 아버지는 우리 공주 자랑 많이 한단다. 최고라고.

공주야 ! 아빠, 엄마 믿고 열심히 살아보자.
아빠, 엄마가 더 열심히 하면 부족하지만 뒷바라지 할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해. 아빠는 항상 공주편이란다. 홧 팅

 

그리고 이 편지 버리지 말고 보관해둬라.
세월이 흐른 뒤 꺼내 보렴.
아빠와 엄마가 항상 네 옆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거야.
사랑 한다 공주야! 정말 사랑 한다 공주야!
아빠 엄마는 영원히 너를 사랑해.

 

          2007.5.21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