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당신
또 하나의 당신(2008.11.18)
세상을 살면서 부대끼며 사는 것이 인생의 맛이 난다.
혼자라면 느낄 수 없는 맛이다.
그래서 둘이어야 하고 혼자는 외로운 법이다.
내가 사는 인생에서 동반자라면 누가 뭐라 해도 마누라이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한시도 흔들림 없이 보살펴준다.
때로는 너무 극진해서 내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거부해본적은 없다.
나는 복 많은 남자, 복 터진 신랑이라고 생각한다.
중매로 만났지만 연애보다 더 뜨거운 감정으로 같이 살고 있다.
남들이 말한다. 두 사람은 연애결혼 했다고.
그러나 중매결혼이라는 답을 건네면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만큼 남들이 보기에 보기 좋은 한 쌍의 부부라고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보이는 것에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마누라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마누라는 나에게 너무 잘한다.
그러나 가끔씩 나의 무자비한 행동 때문에 마누라는 상처를 입곤 한다.
내가 한 행동은 별 의미 없는 것인데 마누라의 생각은 나와 딴판이다.
이것도 그것의 하나이다.
어제였다.
퇴근 후 피곤하여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차에 실린 해산물이
생각났다.
내가 직접 가서 가져오려니 몸이 따라주지 않기에 마누라를 시켰다.
마누라는 가지고 와서 누가 주느냐고 물었다.
동료들이 부산 갔다 온 기념으로 주는 것이라 했다.
여행가기 전날 인사이동이 있었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다시 본청으로 발령이 났다.
낙담을 했다. 그래서 다음날 동료들과 부산여행을 포기하였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길에 해산물을 사서 주었는데 차에 실어 놓고 잊어버렸었다.
마누라는 해산물을 열어보더니만 한 곳으로 미루고는 나무상자를 열어보는 것
같았다.
직장생활, 가족사진 등 잡다한 사진을 모아둔 것이었다.
별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마누라가 다그쳤다.
“아니! 이게 누구라? 누군데 이렇게 다정하게 찍었어? 허이구!”
내보이는 사진을 보니 아니 이게 웬걸 국민학교 동창회하면서 식당에서 여자 친구 둘이와 찍은 사진이었다.
내가 가운데고 두 친구를 양쪽에 볼을 맞대고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술을 많이 먹었는지 얼굴은 빨개져 있었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얼굴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자 사진이 왜 저기 있는지 난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법 수습을 해야 했다.
“아 그거 국민학교 친구들인데 동창회 때 찍은 거라.” 허허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더 칼날선 목소리로 다그쳤다.
“아니! 아무리 동창이라도 그렇치 사진을 저래 찍어도 되여? 애들한테 창피하지도 않아!”
그러고 보니 옆에서 같이 애들도 내 사진을 보고 말았다.
“허허 이사람! 그냥 친구들과 찍은 것인데 뭘 그래.” 하면서 달랬다.
그러나 마누라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화난 표정으로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나만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들을 마구 몰아 세웠다.
내가 친구들에게 여자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면 문제가 있었겠지만 정말 친구로서 술 기분에 다정한 표정을 취했던 것인데 마누라는 내 마음을 몰라주었다.
자꾸만 감정을 상하는 말을 했다.
할 수 없이 진압하는 말을 던지자 마누라는 조용해졌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해봤다.
왜 저럴까? 아니 내가 무슨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설사 그렇게 했더라도 너그러이 봐주면 안되는가?
하는 짓을 보니 이것은 평소의 마누라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마누라가 있는 듯 했다.
몸은 하나지만 생각이 다른 또 하나의 마누라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내가 화를 낸 이후부터 마누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다음날 출근하는 길 배웅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출근 때마다 해주는 입맞춤도 하지 못하고 출근하였다.
그리고 또 하루가 갔다.
그 다음날 퇴근을 하고 술 한 잔 먹고 있는데 마누라한테서 술 한 잔 사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오라고 해서 술을 같이 먹었다.
후배들을 물리고 집으로 가자하니 마누라는 다른데 가서 한 잔 더하자고 했다.
호프집에 가서 맥주를 먹으면서 사진 이야기를 했다.
“난 당신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 난 당신이 다른 여자랑 그렇게 사진 찍는 것 용납 못해. 그러니 다른 여자랑 사진도 찍지도 마.”
참 난감했다. 이 고리를 어떻게 풀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난 절대로 친구를 여자로 보지 않았으니 의심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누라에게 제발 날 내버려두라고 이야기 했다.
나를 너무 사랑하지도 말라고 했다. 내가 혹시 먼저 죽을 수도 있으니.
나 없이도 홀로서는 여자가 되어야 살아갈 수 있기에 강해지라고 했다.
관점이 다른 만큼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했다.
결국 결론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들어 마누라는 가만히 있었다.
궁금하여 눈을 돌리니 마누라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자 마누라는 내게 말했다.
“여보! 나 사랑해?” 울면서 말했다.
자신을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확인해보려는 말이었다.
얼굴을 맞대며 “그럼 내가 누굴 사랑해. 당신 말고 누가 있나? 이 사람이 참내......”하며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마누라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내 몸은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마누라의 소유라는 사실에 섣부른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좀 더 치밀하지 못한 나를 탓해 본다. ‘어이구 등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