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손
거룩한 손(2010.10.15)
살면서 불편할 때가 있다.
큰 사고도 아니었다.
다만 며칠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 단 며칠 동안 나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야 했다.
평상시 늘 있던 일상에서 갑자기 닥친 변화는 나의 가치관을 무참히 뒤바꿔 놓았다.
늘 건강하여 그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다.
늘 받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모르고 있었다.
내 옆에서 나를 뒷바라지 해주는 마누라
그것은 당연히 마누라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부족한 것이 있으면 나무라기 일쑤였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
배고파 찬을 찾다보니 상해버린 음식을 보고 말았다.
음식 남기고 버리는 것에 대해 정말로 싫어하는 나였기에 화가 났다.
전화를 하니 공평 처갓집에 일해주고 있다고 했다.
당장 오라고 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온 마누라
근데 손에 붕대를 팅팅 감고 있었다.
마누라 손을 보니 걱정이 되었지만 올라온 화를 삭이는 것 때문에 물어보지도 않고
마누라를 나무랐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마누라 손이 뭣 때문에 그런지 걱정이 되었다.
어찌 된 거냐고 물으니 삐진 마누라는 답도 않는다.
나중에 알아보니 친정집에 가서 들깨를 베다가 손가락 관절 부근이 낫에 베여
꿰맸다는 것이다.
반성을 했다.
다친 마누라 저렇게 나무랐으니 너무 했다 싶었다.
한참 모자랐던 나를 다그치고 난 그날 저녁부터 집안일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첫째 지연이가 도맡아 했지만 머스마 두 녀석도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거들었다.
그러나 설거지는 그렇더라도 빨래, 청소, 요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픈 마누라를 방관할 수 없는 입장
삐진 마누라 달랠 겸 요리하는데 거들었다.
마누라가 시키는 대로 자르고 다듬고 넣고 하였다.
실밥을 푸는데 2주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첫날부터 당해보니 이건 영 장난이 아니다.
일상의 질서가 깨졌다.
모든 것이 엉망처럼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딸과 아들 두 녀석이 돕고 나도 나름대로 도와주면서 일상의 질서를
잡아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누라의 다친 손을 자꾸 쳐다보았다.
‘제발! 좀 빨리 아물어 붙어라. 제발!’
나를 비롯한 딸과 아들 두 녀석도 엄마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내가 다치더라도 마누라가 다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차지하는 마누라의 공간보다 딸과 아들 두 녀석에 차지하는 엄마의
아픈 공간은 더욱 컸다.
그랬다.
마누라의 손은 약손이며 만능 손이였다.
생을 멀리한 울 어머니의 손도 그러했듯이 마누라의 손도 어머니의 손을 닮아가고 있었다.
가정의 행복을 만드는 손
가정의 기쁨을 만드는 손
가정의 아픔을 치료하는 손
그리고 보듬어 주는 손
힘없어 주저앉는 것을 일으켜 세우는 손
떠는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거룩한 손이였다.
마누라가 건강했을 때 몰랐던 일상의 행복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야 느껴본다.
마누라의 손은 나에게도 소중한 손이었지만 아이들에겐 더욱 소중한 약손이었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몸소 체험했다.
그러면서 2년 전 떠나신 어머니 얼굴을 더듬어 본다.
병실의 마지막 모습이 가슴에 박혀있다.
휴대폰으로 찍은 그 모습을 지울 수 없어 저장하여 가지고 다닌다.
어머니를 보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아 가끔씩 들여다보고 어머니의 거룩한 손길을
느껴본다.
“엄마! 엄마 손 정말 따뜻했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추운 겨울에도 그렇게 따뜻할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