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들

둥지 떠나기(이소 離巢)

청화산 2011. 6. 7. 20:15

 

 

 

 둥지 떠나기(이소 : 離巢)

세월이 가긴 가나보다.
항상 옆에 머물 것만 같았던 맏이 공주님이 집을 나갔다.
엄마 옆에서 조잘거리며 재롱을 떨던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자신의 앞길을

찾아가는 길을 나갔다.

 

새들도 새로운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부화시키고 난 뒤에 먹이를 물어다

키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을 정도 되면 둥지를 떠나는 훈련을 시키다가 스스로

날고 먹이를 잡을 수 있을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난다.
인간사 새에 비해서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똑 같다.
자연의 섭리이기에 떠나는 것은 운명인 것이다.
내가 보내고 싶지 않아도 그것은 숙명처럼 떠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인데도 왜 가슴은 이렇게 찡한지 모르겠다.

 

며칠 전 불쑥 공주가 나한테 물었다.
“아빠! 나 기숙사 들어가면 보고 싶어? 안 보고 싶어?”
난데없는 질문이라 별 생각 없이 말을 하고 말았다.
“야!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보고 싶나?”
그러자 공주는 내말을 듣자말자 서러워 엉엉 울기 시작했다.
성질이 불같지만 마음이 여려 눈물 많은 것을 내 익히 알고 있었다만  갑자기

쏟아내는 공주 눈물에 적잖이 당황했다.
옆에 있는 마누라는 뭔 말을 그리해서 울게 만드냐고 나무란다.
그러나 어쩌랴? 난 영문도 모르고 한 소린데........

 

여고 기숙사에 자리가 났다고 했다.
집이 가깝지만 기숙사에 들어가면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집에 올 수 없기에

저 딴에는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
일주일에 토요일만 집에 올수 있기에.
집에서 다니면 엄마, 아빠, 동생 둘, 모두를 볼 수 있어서 좋다만 대학갈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나야 자식들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는 주의니 개의치 않지만 공주는 못내 집을 떠나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았다.

 

어제는 바로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두 모녀는 종이에 빼곡히 적어 놓은 물품들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저녁 8시 이전에 입교를 해야 된다고 했다.
준비한 물품을 보니 큰 가방에 하나다.
아마도 생활하다보면 저 물품도 모자라 점점 더 불어날 것이다.
7시 반이 되어 짐을 싣고 학교 기숙사로 갔다.
공주는 반 행사를 마치고 나와 있었다.
짐을 가지고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여학생만 있는 학교라 마누라가 따라 들어갔다.
짐을 내리고 나오는 마누라를 보면서 물었다.
“공주는 안 나오나?”
기숙사에 들어가는 공주를 보았다만 나오지를 않으니 인사를 할 수 없었다.
다독이며 용기를 주고 싶었는데...... 좀 서운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기다리는 시간
공주를 못 보고 온 것이 맘에 걸려 메시지를 보냈다.
“열심히 해. 아빠는 널 믿고 응원 열심히 할 테니....... 힘들면 이야기 하고.....

사랑한다. 홧팅”
그리고 공주의 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메시지를 받고 적잖이 놀랐다.
“예! 아빠♥♥”
달랑 석자로 왔다. 문자까지 합치면 5자다.
‘그렇게 눈물을 찍어내던 것이 아빠한테는 저리 감정이 없나?’
그러나 서운함 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성격이 날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누라한테 공주한테 온 메시지를 보여주니 하는 말
“아빠와 똑 같구만”
그래도 여자인데 좀 다정다감한 모습이 좀 있어야 되는데 날 닮은 것이 좀 걱정이 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태몽을 장닭(수탉) 꿈을 대신 꾸었는데 그것도 맘에 걸리고.......
여자는 좀 여자다워야 되는데 얼마나 잘 할지 걱정이 된다.

일찌감치 밥을 먹은 나는 마누라 밥 먹으라고 이야기 했다.
마누라는 밥맛이 없다면서 억지로 먹길래 좀 나무랐다.
“그렇게 둘이 싸우더니만 왜 밥맛이 없어?”
마누라 왈 “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그래?”
답을 그렇게 하는 것을 보니 역시 모녀지간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싸웠으면서도 자기들은 싸운 게 아니란다.
내가 보기에 참 웃기는 일이다.
밥맛이 없는 것을 보니 마누라는 가장 친한 딸을 1주일에 한번 보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잠은 잘 잤나? 딸래미 생각 때문에 잠도 못 잤겠네?”
“아니! 잠은 잘 잤는데 어제 좀 울었지.”
옆구리가 갑자기 허전하니 당연히 울 거라 생각했지만 우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어디서 나 모르게 울었는지 낌새도 못 챘다.

 

아침 출근하는 길
어제 빠뜨린 물건을 갖다주려고 가니 학교 앞 정문에 공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 잤나?”
“예! 아빠! 잘 잤어요.”
순간 어제 하려고 했던 말을 해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했다.
도저히 공주 얼굴을 보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부리나케 차를 몰고 가면서 차안 백미러로 내 얼굴을 보니 두 눈이 벌겋다.
못내 당당한 척 한 해도 나 역시 자식 사랑하는 것은 마누라와 똑같은 가 보다.
공주 시집보낼 때 결혼식장에서 울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이제 정말 집을 떠날 시기가 자꾸 가까워지고 있다.
나의 운명에서 한 해가 자꾸 빠져나갈수록 자식들과 멀어지는 것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운명처럼 말이다.
이제 날개 짓 하는 자식을 보면 불현듯 그 큰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걱정이다.
쓸쓸함과 고독이 그 공간에 채워지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난 그 공간에 쓸쓸함과 고독을 채우고 싶지는 않다.
언제가 다시 엄마 새, 아빠 새가 되어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희망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설사 그것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이제 내년이 지나면 둥지에는 4마리의 새만 남는다.
한 해가 지나가면 또 한 마리 새가 떠나고 또 두해가 가면 새끼 새는 모두 떠난다.
남은 것은 두 마리 나와 마누라이다.
영원히 둥지를 지키며 살아가야할 새들이다.
우리가 둥지를 영원히 떠나는 날은 아마도 하늘비 내리는 그날이 될 것이다.
집 떠난 나의 새들을 그리며 조용히 눈을 감는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