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일기

상주곡자를 가다

청화산 2011. 10. 7. 07:24

낮은 산들이 엎드리고 황금빛 물결이 가득한 상주 들판의 가을은 한폭의 그림같다.

막걸리 담그는데 관심이 많았던 나는 전에 읽었던 허시명 작가의 "막걸리 넌 누구냐"의 책이

생각났다.

책에서 "상주곡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전통누룩 방식의 개량누룩을 제조하는 곳은 전국에 "광주 송학곡자, 경북 상주곡자, 경남

진주곡자"  3군데로 소개되어 있다.

 

평소 막걸리를 좋아하기에 막걸리 담그는 것을 배우려고 생각 중이나 배울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는다.

책대로 하면 되겠지만 실제로 만들어보면 문제점에 부닥치기에 막걸리를 만들줄 아는

누군가의 힘이 필요했다.

바로 장모님이다.

아주 오래전에 장모님이 담근 막걸리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멋모르고 마구 마셨다가 혼쭐이 난 기억이 가물거린다.

최근에 막걸리를 한번 맛보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드니 누룩이 없단다.

그래서 책 속에 소개된 "상주곡자"의 현장도 볼겸 누룩도 살겸 찾아보기로 했다.

 

상주곡자는 경북 상주시 중덕동 659-14(전화 054-532-6888)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를 잘 모르기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대충 지리를 확인하고 중덕 저수지 부근쪽으로 

차를 몰았다.

넉넉한 상주 들녁을 품은 평야는 대풍을 예고하는 그런 느낌이 가득하다.

상주들녁을 따라 가을 풍경을 구경하면서 오다보니 금방 온 것 같았다.

시내에서 7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바로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주곡자에 들어서니 사람들 흔적은 없고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제조실에 들어서니 남자분 한 사람이 계셔서 그 분의 안내를 받아 누룩 제조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누룩틀에서 만든 누룩 덩어리를 한 곳에 모아 (발효)뜨게하는 모습이다.

발효실에 들어서니 엄청나게 후끈거렸다.

후끈거림이 찜질방을 연상케 할 정도로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누룩은 20일정도 지나야 발효가 완성되고 건조된 누룩 덩어리를 빻아 분말로 만들어 푸대에

담아 판다고 했다.

내가 사려고 하니 누룩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딱 1 푸대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 남은 1 푸대를 18,000원을 주고 사면서 허탕치지 않은 것에 복 많음을 느꼈다.

누룩 만드는 현장을 둘러보고 나오려는 차 여자분들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할머니 4분과

아줌마 한 분이 나오신다.

쉬는 시간이라 잠시 쉬고 다시 일하로 나오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누룩 빗는 것을 지켜보았다.

카메라도 준비 되지 않았기에 아쉬운대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누룩을 적당히 물을 섞어 반죽을 한 뒤 무명 보자기에 싸서 틀에 넣고 발로 디딘다.

여러번 꼭꼭 밟아 동그랗게 형이 만들어지면 틀에서 떼어낸다.

요즘 자동화 시설도 있지만 여긴 수작업으로만 한다.

이 시대에 수작업을 고집하는 주인님의 고집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생산량은 많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원재료(밀) 값 상승으로 이윤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누룩 만드는 틀에다 누룩을 넣고 발로 디뎌 만든 모습이 예쁘다.

오랜 시간 일을 해서인지 5 명이 일하는 모습이 호흡이 척척 맞는다.

그래서 막걸리 만드는 방법을 배울까 싶어서 막걸리 만드실줄 아냐고 물었드니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누룩을 만들면서 막걸리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 좀 실망했다.

더구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인데 막걸리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 더욱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같이 한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누룩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룩을 처가집에 갖다 드리고 왔다.

다음에 막걸리 만들 때는 딸래미(마누라) 불러서 만들어라고 부탁을 하면서

그래야 다음에 마누라가 배워온 것을 나도 배울 수 있기에........

 

내 꿈이 하나 있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늙어 퇴직하면 작은 흙집 한채 짓고 혼자 나가서 사는 것이다.

마누라가 따라오면 같이 갈 거지만 아파트 생활에 익숙하여 따라올지 의문이다.

작은 흙집에 옹기 독 하나 두고 막걸리 담아서 친구들 불러 여생을 보내고 싶다.

친구들이 물어오는 사주명리학을 봐주면서.......

그러면 외롭지 않고 즐거운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누룩만 봐도 침이 흐른다.

갑자기 어디서 술 익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곧 내가 막걸리 만드는 날이 오리라.

가슴이 설렌다. 막걸리 먹을 수 있는 기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