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진지와 개밥띠기
짧은 시간에 세상은 너무 변해버렸다.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일상의 삶이었는데 이제는 급변하는 과학 물결 속에 휩쓸려가고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사용했던 일상의 언어들도 사라지고 있다.
미디어 문화가 일반화 되어 모두가 TV시청은 기본이고 개인마다 거의 스마트폰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런 문화에 젖어들수록 대화 기회는 줄어들고 사투리도 자연스레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들어 배운 말들이 그 지역의 고유 방언이요 사투리인데 이젠 그런 사투리를 찾기가 힘들다.
억양 역시도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며칠 전 고향 선배분이 사무실에 들렀다.
이야기 도중에 가브진지 이야기를 하니 알아들었다.
점촌에서 자란 연세 많은 분은 가브진지가 뭐냐고 물었다.
그래서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 표준말로 하면 진드기라고 말해주니 알아들었다.
이놈은 참으로 고약한 놈이다.
이놈은 먹기만 하고 싸지를 않는 희한한 놈이다.
혹시나 사람 중에도 이런 놈 있을까 걱정이다.
이 놈은 소 등에 딱 들러붙어 주둥이를 박고 소 피를 빨아먹는 놈인데 큰 놈은 엄지손가락 굵기 되는 놈도 있다.
이 놈 때문에 소는 괴로워죽을 지경이기에 주인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소 주인은 작은 쇠톱날을 둥글게 해서 만든 등 긁개로 소 등을 긁어주면 가브진지가 땅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는 발로 밟아 터져죽이면 새까만 피가 나왔었다.
그런데 이 놈이 요새 언론의 입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요새는 이놈이 살인 진드기가 되어 소 대신 사람을 괴롭힌단다.
소들이 집단 사육되면서 위생관리가 잘 되다보니 먹고 살게 없는 것인지 잘 먹고 잘 자란 영양가가 풍부한 사람의 피가
더 좋은 것이지 알 수 없다만 괘씸한 놈으로 바뀌어있다.
요놈에게 물리면 『중증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에 걸려 생명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산에 버섯 철이 다와 가는데 혹시 이 놈에게 물릴까 걱정이 된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십 수 년 전의 일인 것 같은데 그 때 산에 버섯 따로 갔었다.
산에 오르는데 고슴도치가 비를 맞고 있길래 집으로 잡아가지고 왔었다.
가시가 엄청 날카로웠는데 가시 사이를 보다보니 등 쪽에 가브진지가 여러 마리 붙어 있어 떼어준 적이 있었다.
그 많은 가시 사이에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브진지는 사람들이 만든 살충제를 피해서 자연 속에서 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가브진지가 이제는 인간을 먹이로 하고 있다.
그런 것에는 괘씸하지만 가브진지라는 방언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인터넷으로 국어사전을 검색해도 가브진지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진드기라고 나올 뿐이다.
아마도 이 단어도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사라질 단어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언이 있다.
개밥띠기이다.
역시 고향 선배님은 이 말도 잘 알고 계셨다.
나는 뭐 큰 것을 알고나 있는 듯이 의기양양했다.
개밥띠기는 표준말로 하면 땅강아지이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름이 되니 전등불 아래 날아다니다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개밥띠기이다.
그 짧은 날개로 불을 찾아 날아든 것이다.
이 놈은 퇴비를 쌓아둔 거름더미 안에서 사는데 야행성인지 여름 밤이면 불 빛 아래 많이 날아들었다.
이놈은 모양새가 꼭 두더지 같이 생겼다.
크기는 어린애들 손가락 굵기만 한데 날개를 가지고 있다.
넓적한 앞발로 땅을 파는데 두더지처럼 잘도 파는 놈이다.
어릴 때 이 놈을 잡아서 구워먹곤 하였다.
미개인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당시에 우리 마을에는 내 또래 아들은 개밥띠기를 구워먹곤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개밥띠기는 어린애들 침 흘리는데 좋은 약이라고 했다.
그 덕인지 어릴 때 침은 흘리지 않은 것 같다.
이 놈도 국어사전을 검색해봤다.
역시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어릴적 사투리로 쓰던 말들인데 내 세대가 지나가면 이 말도 살아질 것이다.
참으로 많은 사투리들이 있는데 이렇게 살아지는 것이 안타깝다.
수년 전에 생각나던 말들을 모아둔 파일이 있었는데 이사를 다니다 보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이제부터는 생각이 날 때마다 옛날 방언이나 사투리를 다시 적어두어야 할 듯하다.
아무래도 내가 죽고 난 뒤에 누군가 정리를 해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