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떠나기 2
둥지 떠나기 2(2014.03.03)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집안에 자리 잡은 느낌이다.
왁자지껄했던 집에 무거운 침묵이 자리하자 집안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가장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마누라다.
자고 일어난 뒤에 어떻게 아침부터 그런 힘이 나오는지 마누라의 목소리는 정말로 우렁찼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마누라의 목소리를 이제 듣기 힘들다.
아침마다 마누라는 조용한 몇 마디로 아침 일과를 끝내고 있다.
“수종아! 밥 먹어. 왜 밥을 안 먹어. 계란이라도 먹고 가.”
이게 전부다.
“원종아! 일어나라. 안 일어나나? 아니 뭐 해여 아직도 안 일어나고? 빨리 일어나!”
하이고 내가 정말 미쳐여.“
매일 아침은 그야말로 장날처럼 시끌벅적 했었다.
아침 마다 외치는 소리는 우리 집이 깨어났음을 알리는 신고 소리였는데 이제는 너무 조용하다.
그러니 이웃에서 저 집 이사 가지 않았나 하고 의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환경에서 적응해왔는데 갑자기 찾아든 침묵에 적응이 잘 안 된다.
뭔가 텅 빈 느낌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가득하다.
3.1일 온 가족이 부산대 밀양 캠퍼스로 함께 동행 했다.
둘째 원종이가 부산대로 가게 되어 저 누나와 같이 대학생활을 같이 하게 된 것이다.
신통하게도 막둥이도 같이 따라 나섰다.
저 형이 집 떠난다고 하니 큰마음 먹고 가는 것 같았다.
한 방에서 같이 자고 생활 했던 형이 떠난다고 하니 막둥이 역시 아쉬웠던 것 같았다.
차에 짐을 싣는데 두 사람 짐이 실리니 도저히 실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큰 박스 하나를 택배로 보내기로 하고 짐을 차곡차곡 실었지만 차안이 좁아서
발 뻗히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진짜로 가는구나. 둥지를 떠나는구나.’
출발 할 때는 온 가족이 있어 떠난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서 짐 정리를 하는 시간
나는 차에서 잠을 청했다.
짐을 풀지도 모르는 아들이 맘에 걸렸던지 마누라는 청소부터 시작해서 짐 정리를 다 끝낸 후
내려왔다.
이제는 맏이 딸 지연이, 둘째 아들 원종이를 이곳에 두고 떠나야하기에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막둥이는 찍기 싫은지 몸을 뺐지만 다시 붙들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오늘 찍은 이 사진은 먼 훗날 세월의 흔적을 일깨워줄 것이다.
밥 잘 먹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당부의 말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출발하였다.
차가 출발하자 갑자기 차 안이 침묵이 흘렀다.
채 밀양을 벗어나지 않아 슬쩍 옆 눈으로 쳐다보니 마누라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마누라의 눈물을 보노라니 나 역시 찡한 마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색을 할 수는 없고 기분 전환 시켜보려고 막둥이한테 말을 건넸다.
“야! 수종아. 너 엄마 운다.”
그러자 막둥이의 말이 걸작이다.
“아니! 나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울어여.”
퉁명하게 말하는 그 소리에 나와 마누라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웃음도 잠시 마누라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아니! 지연이 갈 때도 저렇게 울지 않았는데 둘째 보내는데 왜 그러지? 두 번째 가는 거라
안 울 줄 알았는데.........’
마누라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운전하는 두 시간 동안 눈물을 찍어내니 집에 도착했을 때 마누라의 눈은 팅팅 부어 있었다.
‘참 대단하네. 언제까지 울려고 저러는가?’
마누라는 둘째 보내고 난 뒤 텅 빈 감정을 술로 채우려는지 막걸리를 한 잔하자고 했다.
집 근처 자주 가는 막걸리 집에 마누라와 내가 들어가니 주인아줌마가 놀라셨다.
마누라 표정을 보니 울었던 게 역력한데 물어보지도 못하고 얼른 방을 내어주었다.
둘이 앉아서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마누라를 달랬다.
그러나 한 잔 술이 들어가니 더 복받쳤던지 울음소리까지 났다.
마누라가 저리 우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바로 싸운 정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아침 등교시간 소리를 지르며 나무랐지만 마누라가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마누라의 자식 사랑은
더욱 커져갔던 것 같았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저 스스로 손톱 발톱을 깎을 줄 알면서도 저 엄마한테 깎아 돌라고 응하는
아들에 대한 애틋함?
아니면 심부름을 시켰을 때 두 말 않고 심부름 하는 아들의 기특함 때문 등 복합적인 감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둘째는 막둥이와 비교하면 항상 동작이 느렸다.
일어나라고 소리 지르면 억지로 일어났고 일어난 뒤에 이부자리에서 또 꾸물거려서 또 소리를 지르면
화장실 갔고, 화장실 가서 기척이 없어 뭐하냐고 소리 지르면 겨우 나와서 아침 밥 먹고
학교를 갔었다.
아침 등교시간은 내내 지각 선에 머물러서 학교에서 전화가 온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아들이 혼자 떨어져 스스로 생활해야 되니 못내 미더운 엄마는 걱정이 쌓여 눈물이 아니
흘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 험한 세상 스스로 서려면 홀로서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거늘 옆에서 지켜보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강한 자식을 만들기 위해서 강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자식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뒷바라지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보인다.
팽이도 스스로 한 점에 서려면 심한 매질과 둥근 원을 돌면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제 우리 둘째는 큰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때려주는 채찍을 스스로 맞으면서 큰 원을 그리면서 자신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 이겨낼 수 있으니 분발하는 아들을 기대해 본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누라 손을 꼬옥 잡았다.
마누라가 아들 보낸 시간을 극복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텅 빈 느낌이 가득한 집안에서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약이니 잘 견디어 내리라 믿는다.
그러나 어차피 둥지를 떠날 자식이라면 웃으며 놓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와 마누라가 아들을 안고 있으면 있을수록 인생의 경쟁력은 떨어지는 법이니.......
어디선가 누구에 들은 말이 기억난다.
집 나간 자식들 맨 처음 돌아오면 맨발로 마당까지 뛰어나가지만 익숙해지면 문만 열고
반긴다는 말이 지금 현실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아마 마누라도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더 이상 아들에게 미련두지 말자.
아들 떠난 자리에 큰 공간이 있더라도 슬퍼하지 말고 아들 떠난 자리에 나를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마누라는 술 좋아하는 신랑을 아들 자리에 두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난 아랑곳 하지 않고 꿋꿋하게 잘 지낼 것이다.
외톨이 생활에 익숙한 나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