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이야기
설날이다.
그러나 컨디션은 최악이다.
부천까지 제사를 어떻게 지내로 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몸이 최악이다.
설 전 전날 지인들과 거하게 막걸리 한 잔하고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잤나보다.
다음 날 일어나니 코구멍이 따갑고 목구멍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감기가 걸린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제사를 지내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에 할 수 없지 어제 부천에 올라
왔지만 운전하는 내내 어지러울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았다.
그래서 몸살 감기약을 사먹고 잤지만 약간 차도만 있을 뿐이었다.
막내동생 아들 호근이가 군대를 간다하기에 돈 20만원을 주고 막내 성근이는 5만원을 주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
아르바이트 나간 공주와 막둥이가 맘에 걸렸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마누라한테 문경 휴게소 들리자고 하니 상행선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던 차 연풍을 앞두고 차가 밀리는 기색이 들기에 연풍에서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가
문경휴게소에 들리자고 하니 마누라도 가보자고 했다.
설 연휴에 쉬지도 못하는 공주가 막둥이가 걸렸는데 내려오면서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문경휴게소 뒷길에 차를 두고 내리니 아직도 몸살기가 심해서 으슬으슬 떨렸다.
문경휴게소에 가니 호두빵을 굽고 있는 막둥이의 모습이 보였다.
고3인데 밤세워 공부해야 될 시간에 저렇게 아르바이트 하는데로 모는 내가 진짜 아버지가
맞는지 아버지로서의 자격지심이 밀려왔다.
그래 이런 것도 인생에 공부다.
언제나 아버지가 너희들 곁에서 도와주고 해줄 수도 없는 법
스스로 홀로서기를 배워야 하기에 힘은 들지만 좋은 경험이 되리라.
"호두빵 3,000원 어치 주세요"
아들이 손님 맞이에 정신이 없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어! 아빠 어째 오셨어요."
"너 일하는 거 보러 왔다."
호두빵 3,000원어치를 사서 나오는데 공주가 보이지 않았다.
점심 먹고 쉬는 시간이란다.
혹시나 잠자는 시간에 깨울까봐 그냥 아쉽지만 집으로 왔다.
컨디션이 떨어지면 사람의 감정도 날카로워 지는가?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도중에 발고락 골절로 벌써 4주 가까이 기브스를 하고 있는 둘째가
친구를 만나로 나간다고 했다.
점잖게 타일렀다.
발 아픈데 가지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알아듣는 듯 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다 다시 저 엄마한테 나갔다오겠다고 했다.
'아니 오늘이 설날인데 이것들이 뭐하는 짓이지? 엄마 아버지가 안중에도 없는 것 아닌가?'
오늘이 설날인데 부천서 내려오자 마자 인사를 하고 세배를 하던지 아니면
누나하고 동생이 오면 같이 세배 하겠다고 하던지 이래야 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호되게 혼을 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 갔던 공주와 막둥이가 집에 돌아왔다.
떡국을 준비해서 설날이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같이 먹을까 했는데 둘째가 안 먹는단다.
참았던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정월 초하루라고 조용히 하려고 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야아! 너들 뭐하는 짓이라. 오늘이 뭔 날인지 아나? 설날이다 이놈들아.
설날이면 너들 엄마 아빠한테 최소한 세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대학교 다니는 놈들이 그것도 모르나? 먹기 싫으면 다 나가."
내가 워낙 심하게 다그치자 마누라고 왜 뾰족하게 그러냐고 나무란다.
떡국을 먹고 난 뒤에 세배를 하였지만 나는 세배돈을 주지 않았다.
사정해서 절 받는 거 싫은니 너 엄마한테 받아라고 하였다.
내가 교육을 잘못 시킨 것 같다.
우리 집에 애들도 저러는데 밖에 나가서 다른 집 애들을 탓하지 않았는지........
집에서 가정교육을 못 시킨 내가 잘못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너무 자유스럽게 방관했던 것 같다.
이제는 바꿔야겠다.
애들에게 미운 아버지가 되더라도 내 할 말은 해야겠다.
세월이 흐른 연후에 혹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니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해서라도 똑바로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