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산 2016. 5. 2. 21:30

한복(2016.04.30)

 

 

 

옷이란 무엇일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아님 단지 나의 몸을 가리고 보호하는 나만의 배짱 패션일까?

아무래도 옷은 위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 좋은 옷차림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문경전통 찻사발 축제날이다.

과장급 이상은 한복을 입고 오란다.

며칠 전 마누라한테 축제 때 한복 입고 가야된다고 이야기 했었다.

혹시나 옷이 세탁소에 있을까봐 미리 준비하라는 뜻으로.......

 

나는 한복이 딱 두벌 있다.

하나는 결혼 할 때 예물로 마누라가 해온 것이지만 결혼식 마치고 여행 갔다 오면서 처갓집 갈 때

입은 것 외에는 전혀 입은 기억이 없다.

그 한복은 장롱 어디엔가 쳐 박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벌은 개량한복이다.

동에 근무할 때 아리랑 경연대회 때 입었던 옷으로 보라색이다.

옛날 한복은 겨울용이고 개량한복은 지금 계절에 맞는 옷이다.

개량 한복은 입을 시기가 지금이 딱 좋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옷이기에 축제 때

개량한복을 입을 참이었다.

 

이틀 전 마누라는 개량한복을 한 벌 들고 왔다.

외관상으로 보니 내가 입던 개량한복하고는 아무래도 값 비싸보였다.

그러나 한복 입을 일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기에 새로 사서 뭘 하겠나 싶어 안 입는다고 했다.

그래도 마누라는 다른 사람 다 폼 나는 것 입는데 당신도 좋은 것 한 벌 입으라고 했다.

애들 학비도 많이 들어 쪼들리는데 비싼 한복 입는 것이 사치로 여겨졌다.

그래서 안 입는다고 했다.

그러나 마누라는 굳이 자꾸 새로 한 벌 사 입으라고 했다.

어차피 올해 말고 내년에도 계속 입어라고 할 텐데 새로 사 입어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당직이라서 안 간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한복 구입은 그렇게 끝난 걸로 마무리 되었다.

 

어제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서 당직이지만 낼 찻사발 축제 개막식은 잠깐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근무도 하고 있으니 격려 겸 잠깐 들러보는 것도 좋았기에.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 데 마누라는 시내 볼일이 있다면서 잠깐 다녀온다고 했다.

TV를 보고 있는데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왔다.

낼 개막식 몇 시에 가냐고.

열 시 반쯤 간다고 했다.

누굴 태워갈 사람이 있나? 아님 마누라는 자길 데려다 달라는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가?’

TV를 보고 있는데 마누라가 집에 들어왔다.

종이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이걸 입어보라고 했다.

돌아다보니 한복을 하나 준비해서 왔다.

지난 번 가져온 개량한복과는 한참 다른 차원이다.

아무래도 가격은 지난 번 가져온 것 보다 훨씬 비싸보였다.

마누라는 낼 개막식 갈 거면 좋은 것 하나 입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 입는다고 했는데 자꾸 입어보라고 해서 그만 화를 버럭 내고 말았다.

작은 누나한테 전화까지 하면서 나를 설득하려고 하니 화가 더 날뿐이었다.

결국 내가 더 큰 소리를 치는 바람에 한복 구입은 그냥 끝이 났었다.

 

다음 날 아침

마누라는 많이 삐졌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상을 차려주었다.

차려준 밥을 먹는데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다.

사람이 옷 잘 입어서 뭘 해. 오장육보가 똑 발라야지.”

그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떠올랐다.

우리 어머니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진짜로 옷 잘 입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난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먹고 입히고 키우는 것이 힘들었기에 새 옷 하나 입히는 것이 정말로 힘들지 않았을까?

너무나 힘들었기에 옷 사달라고 하지마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갑자기 눈물이 밥그릇으로 뚝뚝 떨어졌다.

힘들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지니 그냥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마누라는 내가 흘리는 눈물을 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밥 먹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한테 새 옷 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평소에 어머니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은 까닭으로.

내 옷은 다른 집에서 입다 가져온 옷을 기워서 입었고 형이 입던 것을 내려 입었었다.

때론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와 누나가 직접 뜨개실로 만든 독구리(윗옷)와 바지를 입었었다.

어느 하루 어머니가 만든 뜨개실 바지를 입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엄청 컸었다.

그걸 입고 동네를 나가니 애들이 나를 ◌◌이 똥자루라고 놀려 그것을 다시는 입지 않았던

기억이 생각난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어머니의 말에 세뇌되었는지 입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금 내가 입는 옷들은 내 스스로 가게에 가서 산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계절이 지나 오래되었다 싶으면 마누라가 가게 가서 옷을 사왔고 그러면 나는 옷이 있는데 뭣 하러 샀냐고

나무라면서 군말 없이 입었었다.

어쩌다 안 보이는 옷을 버리면 물어보지도 않고 옷을 버린 마누라를 많이 나무라곤 했었다.

옷은 내가 꼭 필요할 때만 사 입어야 된다고 머릿속에 꽉 박혀 있었기에.

그렇기에 나는 마누라가 사온 개량한복을 입지 않았다.

집안 경제도 어려운데 굳이 새 옷을 사 입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새 옷보다는 정말로 어머니가 말한 그 말이 맞다고 생각된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런 아들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보다는 마음이 알찬 것이 좋지 않은가?

그래! 좋은 옷 입어서 뭐해? 입은 내가 편해야지.’

그래도 나는 대물림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패션도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