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들

공주가 입원 하던 날

청화산 2016. 10. 26. 22:00

공주가 입원 하던 날(2016.10.22)


세상살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있을까?
내가 바라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이루고 싶은 것들
이런 모든 것들이 내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로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산다면 인생은 정말 행복할까?
너무 변화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살이는 굴곡이 있는 만큼 행복의 깊이와 높이도 달라지는데.......
고통과 걱정이 따르지 않은 행복을 이루고 산다면 진정한 행복의 맛을 알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꿈들을 꾸어본다.
그런 꿈들을 꾸는 자체만으로 현실의 장애에서 떨어져 있을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들 결국 장애물은 피하지 못 한다.
다만 잠시의 시간동안 맞닥뜨릴 시간을 늦추었을 뿐이다.
내 삶에 지워진 모든 짐들은 결국은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다.
누군가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살아 있음에 내가 지고가야 할 짐인 것이다.
아버지로서 당연히 지고가야 할 짐인 것이다.
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뚫고 가야하는 것이다.
힘들고 눈물이 나더라도 그냥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고 나의 책무이기에 나는 뚜벅뚜벅 가야만 한다.
누군가에게 전가해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이름표가 붙은 까닭으로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아버지의 역할 때문인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 것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자식을 위해서 그리고 마누라를 위해서 살아야 할 운명인 것이다.
그래서 나보단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이 자식이 중심이 되게 된다.

새재 경북 23개 시군이 참여하는 소믈리에 행사를 마치고 와서 취기 때문에 집에서

잠시 눈을 부치고 있었다.
잠시 깊은 잠이 들었는데 휴대폰 진동 소리에 잠을 깼다.
비몽사몽간에 휴대폰을 보니 공주님이란 메시지가 뜬다.
‘갑자기 뭔 전화지?’
전화를 받는 순간 공주의 목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용운데요. 지연이가 배가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에 왔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어? 왜? 어디가 어때서? 지연이 옆에 있나?”
“예. 옆에 있는데 많이 아픈가 봐요.”
“바꿔봐라.”
전화를 받은 공주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억지로 말을 하였다.
말도 못할 정도로 아팠나보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아 약을 먹었다고 하는데도 아프다는 것이다.
일단 진료 받고 약 먹고 차도가 있는지 전화를 하라고 했다.
보통 전화는 마누라한테 오는데 나한테 온 것을 보니 보통이 아닌 듯싶었다.
마누라한테 전화를 했다.
지연이한테 전화 받았냐고 하니 일 하느라 못 받았다고 했다.
자초지종 이야기 하고 지금 가봐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갔다 올 테니 전화하라고 하면서 나왔다.
나가서 일행들과 술을 한잔 하는데도 신경이 쓰였다.
술 먹는 도중에 일찍 일어나야 된다는 말을 하고 일어났다.
새벽녘 부산을 가야할 지도 모르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공주의 어릴 적 생각이 났다.
공주가 15개월 되던 날에 둘째 남동생을 낳았다.
아직도 너무 어린 나이인데 너무도 빨리 맏이 자리를 차지했다.
병원에서 마누라와 같이 온 둘째를 처갓집에 눕혀 놓았을 때
공주는 아기 머리맡에 와서 “아가! 아가!”하던 생각이 났다.
그 순간 공주한테 너무 안됐다는 느낌이 울컥 하면서 올라왔었다.
지금까지 내가 잊지 않고 그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맏이 공주한테 많은 애정을 주지 못해서가

아닐까 생각 된다.
그 이후부터 맏이 공주는 밑으로 두 남동생한테 치여 찬밥 신세로 자랐었다.

며칠 전 막둥이 생일이 있었다.
가까운 안동이지만 집을 오라고 해도 잘 오지도 않고 해서 밥이나 옳게 끓여 먹는지 걱정이 되었는데

마침 생일이라 해서 안하던 짓을 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카카오톡으로 25,000원 짜리 케익 선물을 했다.
더듬거리면서 했지만 선물이 막둥이한테 잘 전달되었다고 했다.
그것으로 그냥 끝난 줄 알았는데 며칠 뒤 마누라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수종이한테 케익 선물하면서 공주한테는 왜 안했어? 공주가 많이 서운해 하던데”
‘내가 생일선물 한 것을 막둥이가 저 누나한테 이야기 했구나’
안 그래도 어릴 적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남아 있는데 마누라한테 그 소리를 듣고 보니 나의 죄업은

더욱 크진 느낌이 들었다.
“아! 그거 생각나서 첨으로 해 본거라. 딴 뜻 없어. 차별한 것 아니고 내년에 공주 생일 때

선물 해줄게.”
그 말로 얼버무렸지만 감당할 수 없는 차별 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내 맘 속은 죽어도 차별한 것이 아닌데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
맘속에 짐을 하나 더 짊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공주는 다음 날 회복을 하였다.
그 전처럼 목소리도 밝았고 걱정마라고 하였다.
안심은 되었지만 또 다시 재발될까 걱정이 된다.
세상은 내가 보는 눈과 다르다.
내가 보는 것은 모두 똑 같다고 느꼈는데도 자식들이 보는 눈은 다르다.
사랑의 양과 깊이도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식들에게 주는 사랑이야 말로 깊이 있게 생각해 주어야 될 듯싶다.
순간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행동들은 자식들에게 작은 금을 남긴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이라고 해서 더 사랑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똑 같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겪은 차별적인 나의 행동에서 앞으로 내가 처신해야 할 지침을 받은 것 같다.
이 지침에 의하여 똑 같은 사랑을 자식들에게 주고 싶다.
자식들이 속을 썩이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