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요즘 들어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마누라는 늙었다고 한다.
그런 말을 흘러 보내지만 머리가 백발에 가까운 나를 되짚어 본다.
오늘도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화장실을 보고 와 다시 잠자리에 몸을 누이며 옆에 잠들어 있는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았다.
화장을 지운 마누라의 얼굴.
지난 밤 술에 취해 잠드는 바람에 얼굴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마누라 얼굴을 보니 오늘 따라 예뻐 보이는 것은
아직도 덜 깬 술기운 때문은 아닌지.
여자의 얼굴은 주량에 비례한다는데.......
그래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마누라를 쳐다보니 사랑 섞인 안타까운 마음이 소리 없이 일어선다.
아침이면 애들 학교 때문에 일어나라, 학교 빨리 가라하고 저녁이 되면 숙제 다 했나, 어서
자라하면서 쉴 새 없이 소리를 치는 모습을 떠올리니 마누라의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마누라의 고함치는 소리는 우렁차다.
내 목소리 보다 훨씬 크다.
시집 올 때만 해도 다소곳하고 목소리 낮은 여자였는데 이제는 씩씩한 여자로 바뀌어 있다.
역시 대단하다. 다윈의 진화론이 새삼 맞다는 산 증거이다.
오늘은 휴일.
휴일이지만 아침 시간은 벌써 7:30분을 넘기고 있다.
평상시 일어나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러나 마누라는 일주일 동안 쌓인 잠을 오늘 모아서 자는 듯하다.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아 책을 보기로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애들 방에서 장난치는 소리가 났다.
머시마인 두 놈의 장난은 보통이 아니다.
항상 알고 있지만 장난은 싸움으로 바뀐다.
아니나 다를까 형은 동생을 탓하고 동생은 형을 탓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치고 박으며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평소 때 싸우는 소리와 좀 달랐기에 순간적으로 화가 굉장히 많이 났다.
‘이놈들, 그렇게 싸우지 말라고 일렀건만 식전 아침부터 싸워’
누워서 책을 보다 말고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야! 너 둘 다 일로 와!”
“빨리 와!”
그러면서 나는 장롱 위에 올려놓은 회초리를 찾았다.
애들이 안방으로 건너오자 나는 회초리를 들었다.
“아니! 내가 뭐라캐써? 싸우지 말라고 했지. 근데 왜 싸워?”
얼마나 화가 났는지 회초리로 종아리 3대를 때렸고 손을 들게 했다.
그러나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꿇고 앉아 있는 애들 발바닥을 두 대 때렸다.
막내는 얼마나 겁이 났는지 벽을 보고 손을 들고 있는데 벌벌 떨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내 마음이 이상해졌다.
‘너무 심하게 애들을 대한 것은 아닌지...........’
내 기억에서 가장 세게 애들한테 매를 댄 날이었다.
불현듯 과거의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형은 나보다 두 살이 많았다.
형이 나뭇지게 짐도 대신 지어주었다.
장날마다 10리나 되는 길 힘든 리어카도 대신 끌어주었다.
또 중학교 때는 자전거도 나에게 양보하고 10리를 걸어갔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고마움도 모르고 싫으면 형한테 달려들었다.
싸움은 힘으로나 덩치로나 형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일방적인 싸움의 결과는 어머니가 아는 법.
행상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신 어머니로부터 형과 내가 싸웠다고 혼이 났었다.
어쩌면 지금 나의 애들이 싸우는 것은 나의 어릴 적 모습과 같음에 전율을 느낀다.
대물림 같은 느낌이 자리를 잡는다.
‘어머니한테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집 애들은 매를 안 들어도 말을 잘 듣는다고 하는데......’
내 자신의 사고방식을 나무라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머니로부터 호된 단련은 인생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과 마음이 서로 맞지 않을 때도 남을 먼저 이해하고 포용하는 편이다.
나는 애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버지가 매를 드는 것은 아버지로서 너무 엄해서만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아마도 남들보다 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너희들의 행복한 삶이 곧 아버지의 행복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힘 있을 때 때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늙고 힘들면 그때 너희들을 때릴 수도 없지만 맞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매를 들 때에도 모든 것이 아버지가 틀렸다고 할 것이다.
세월의 물결 앞에 당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의 시간이 짧아 내가 죽음의 사선에 가까워 질 때
너희들은 나와 같이 아버지의 모습으로 세월과 마주할 것이다.
그때 네 자식들을 때리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미워하지 않고 가슴 아리도록 사랑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아버지가 너희들을 때린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월이 실어다 주는 늦은 사랑의 깨달음이다.
자식을 때려 놓고 즐거워할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너희들 몸에 회초리의 자국이 남아있다면
아버지의 마음에는 너희들 멍든 자국보다 더 큰 회초리의 자국이 남아 있으며
맞을 때 너희는 순간의 아픔을 느끼겠지만 아버지는 몇 날 아니 눈을 감을 때까지
그 때의 아픔을 계속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애를 심하게 때렸다고 마누라가 나무란다.
안 그래도 마음이 아픈데.
바가지 긁는 소리가 높아질수록 아버지인 나의 설자리가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다.
가족으로부터의 외면 같은 물결이 밀려온다.
갑자기 부쩍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잘못하면 때려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