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들

홀로서기 첫발 내 딛기

청화산 2010. 7. 21. 16:31

 

홀로서기 첫발 내딛기(10.07.19)

세월이 밀어내는 힘에 따라 둥지를 떠나야 한다.
새가 둥지를 떠나 듯 사람도 그렇게 떠나야 한다.
세상살이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저절로 익혀지는 것도 아니다.
새들은 둥지를 떠기 전 수많은 훈련을 한 후에야 둥지를 떠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둥지를 떠나는 시점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언제가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다.
그렇다면 그런 훈련 과정은 미리 배우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인생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눈물과 땀이 점철되는 세상살이에서 수많은 역경이 따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 단계 도약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기꺼이 받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불현듯 나에게 둥지를 떠나야 하는 슬픔이 곧 다가올 것 같다.
품안에 있어 항상 옆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멀지 않은 것 같다.

며칠 전 마누라가 나에게 말했다.
“지연이가 방학동안에 아르바이트 하려고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여?”
“뭐어? 아니 왜?”
“특별한 것은 없고 친구하고 같이 한다고 하던데.”
잠시 생각을 했다.
돈이 필요하다면 안 줄 내가 아니고, 저 엄마 역시 그렇게 닦달하지 않았는데 왜 공부는 안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가 원한다면 할 수 없지 뭐. 알아서 하게 해”

 

지난 토요일부터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침 10시가 가까워지자 마누라가 말했다.
“지연이 오늘부터 아르바이트 나가여. 그러니 좀 데려다 주고 와.”
옷을 차려 입은 공주님을 데리고 문경여중 근처 택지 개발지구에 있는 놀부보쌈 집으로 갔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것 같다.
차에서 내리는 공주님을 보니 걱정이 되었다.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왜 사서 고생을 하려는 것일까?’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밤 10까지 일하는데 장장 12시간이란다.
서빙하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걱정이 많이 되었다.
혹시 뜨거운 국물이라도 쏟지 않을까?
잘못해서 그릇을 깨뜨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눈에 밟혔다.

 

저녁을 먹으면서 시계를 보니 8시
아직도 공주님 마칠 시간은 2시간이 남아있다.
왜 이리 시계가 가지 않은 것일까?
그냥 시계 침을 확 돌려놓고 싶었다.
가지 않는 시간을 재촉하며 9시 50분이 가까워질 무렵 나는 집을 나섰다.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 기다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놀부보쌈”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김 서린 창문을 통해 안을 쳐다보았다.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이 서빙하는 사람 같은데 서린 김 때문에 사람 형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식당 안은 분주히 움직였다. 앉아 있는 손님도 많았고.
아직도 5분이 더 남아 있는데 마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10시 다되어 가는데......왜 안 마쳐주지? 이 주인장 심보가 못된 사람 아닌가?’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창문 가까이 갔다.
그러나 공주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차로 돌아와서 목을 내밀고 가게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오겠지 기다렸다.
10시 10분이 넘어서야 공주님이 나왔다.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힘 많이 들었지? 저녁은 먹었나?”
“예. 식당에서 주는 거 먹었어요.”
“오늘은 무슨 일 했는데?”
“저는 서빙하는 것 안하고요 하루 종일 설거지만 했어요.”
하루 종일 서 있었으면 다리가 얼마나 아팠을까?
안 그래도 허리가 아프다고 침을 맞고 하던 애였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자격지심이 일어났다.
‘내가 못나 애를 이렇게 고생시키는구나.’
아버지 잘못 만나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자식은 강하게 키워야 된다고 평소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아니었다.
내가 만일 돈 많은 아버지였다면 공주를 저렇게 생업전선으로 내보냈을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을 생업 현장으로 몰았다는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다리 많이 아프겠다. 하루 종일 서 있어서........”
“예 좀 아픈데요. 참을 만 해요.”
어른답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쩍 눈을 돌리니 눈가에 눈물어리는 것이 보였다.
하루 종일 서 있어 힘든 모습을 저 스스로 이겨내려는 눈물 빛이다.
“그 봐라. 돈 버는 게 쉽지 않지? 그래서 공부를 해야 되는 거야.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자나. 이번 아르바이트가 너에겐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다.”

 

하루 일당이 48,000원이란다.
일을 잘하면 시간당 4,500원으로 올려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힘들면 어제든지 그만 둬라.”
“아니요. 방학 끝날 때까지 할 거예요.”
“그 돈 벌어서 어디 쓸 데 있나?”
“아니요. 특별히 쓸 데 없어요.”
“그러면 뭐하려고 돈을 벌려고 하나? 힘든데.”
특별히 할 것도 없으면서 공주는 끝까지 하겠다고 했다.
“그럼 그 돈 받거든 아버지 술이나 한 병 사라. 막걸리 한 병이면 되니. 아! 아니다.

너 엄마 것까지 한 병 더 사라.”
“예에. 아빠 사드릴게요.”

과연 공주님이 막걸리를 사가지고 왔을 때 내가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꿀꺽 꿀꺽 넘어가야 할 술이 목구멍에 걸릴 것 같다.
겨우 목넘이를 넘겨 술에 취하면 아마도 난 울어버릴 것 같다.
“아버지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제 일한지도 이틀이 지나갔다.
매주 토, 일요일 두 번 서빙하러 나간다.
아침과 밤에 내가 차로 태워준다.
태워주면서 마지막 하는 말 “힘들면 하지마라.”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도 생각한다.
그래 세상의 이치를 미리 깨우치는 것도 괜찮지.
아마도 먼 훗날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인생은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너도 이제 홀로서기의 첫 출발을 했다.
힘들겠지만 그것도 소중한 인생의 경험이 될 것이다.
혹시도 모를 부모 없는 세상에서 네 혼자 서는 법도 배워야 하는 법.
이왕 할 거면 당당히 해라.
아버지가 일찍이 고등학교 마치고 홀로 서는 연습을 했듯이 너도 열심히 배워라.
막막한 세상에서 그래도 혼자 설 수 있는 용기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이 힘든 세상을 떨쳐

나갈 수 있으리니.
그래 멀리 멀리 날아라.
네가 날고 싶은 곳 까지 날아라.
그러나 날기 전에 제발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나의 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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