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2011.08.29)
나에게 주어진 복이 있다면 3남매를 두었다는 것이다.
딸 하나, 아들 둘 이제 고2, 고1, 중3이다.
어릴 적 아장아장 걷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부쩍 자라 둘째 놈은 키가 나와 거의 같다.
아마 올해가 가기 전 연말이면 나보다 훨씬 더 클 것 같다.
목소리가 달라지고 수염이 나고 알게 모르게 많이 변하고 있다.
가끔씩 자세히 아들 얼굴을 들여다본다.
나를 닮은 구석이 어디 있는 가 싶어서
막둥이는 나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첫째와 둘째는 어쩐지 엄마를 많이 닮았다.
가족사진을 놓고 보면 나만 다른 사람이고 네 명의 얼굴이 참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은 외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 소리를 듣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다.
나 역시 내 자신에 대해서 잘났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기에 차라리 외탁을 하여
나보다 더 잘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굴도 나보다 더 잘 생기고 공부도 나보다 더 잘했으면 한다.
어릴 적 가정환경 탓으로 남들보다 공부하는 여건이 좋지 않아 평소 실력으로 시험을 쳤었다.
그래도 난 장학금을 받지는 못했지만 중학교 시절에 전교 10%안에는 항상 들었었다.
그 시절에 모두가 나처럼 공부했기에 뭐 특별한 것이 있겠냐마는 전교 1등 하는 애는
공부를 엄청 했었다.
가정 형편도 좋고 뒷바라지를 해주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었다.
당시에 난 그런 애들이 부러웠다.
집에서 뒷바라지 다해주니 공부만 하면 되는 환경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계절 쉼 없이 일을 해야 했다.
땔감하기, 김매기, 염소 먹이와 토끼 풀하기 등 일상에 잡다한 일들이 엄청 많았다.
해가 떨어지면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가 행상 나간 동네 어귀에서 어둠과 싸움을 했었다.
어둠이 짙으면 짙은 어둠 속에서 무엇이 나올 것 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으면서 어머니를 기다렸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머리에 옷 보따리를 이고 어머니가 나오시면
반가운 마음으로 그 보따리를 받아 자전거에 싣고 집에 돌아오곤 했었다.
당시에 어머니는 말했다.
“윗집에 ○○는 새벽 두 시까지 공부한다는데 너도 좀 해라.” 고 했다.
그러나 몸이 받쳐줘야지 공부를 하지 낮 동안 시달린 몸은 이내 졸음을 몰고 오니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래도 기본 머리가 있으니 더 이상 처지지 않고 현상을 유지 했었다.
이제 그 시절도 아득히 멀어진 지금
대물림 하고 있는 아들을 본다.
중학교 입학 때 10%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성적이 꾸준히 올라 전교 10%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고등학교를 어딜 가냐 망설였지만 문창을 선택했고 입학성적이 좋아 청운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1학년 들어가서 혹시나 성적이 쳐지지 않나 걱정을 했지만 나름대로 현상을 유지했다.
생물 시험은 1등급을 받을 정도로 탁월하지만 영어, 수학 성적이 좀 딸렸다.
아침 출근하면서 등교하는 애를 데려다 주면서 수학 영어만 하면 넌 상위권에 들 수 있는데
영어, 수학은 매일 좀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윽박지르지는 않는다.
공부라는 것이 자기가 하고 싶어야 되는 것이지 내가 억지로 하라고 한다 해서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무관심도 아버지의 역할이 아니기에 적당히 하는 편이다.
그래도 현상 유지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날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집에서 마누라와 막둥이 셋이서 있는데 아들이 말했다.
“아부지! 저 장학금 탔어요.”
“뭐어? 진짜로?”
“예! 동창회에서 주는 건데 30만원 받았어요.”
“야아! 잘했다. 그래 수고했다.”
전화를 끊고 난 뒤에 마누라한테 이야기 했다.
“원종이 장학금 받는다고 하는데 당신 아나?”
“아니! 모르겠는데...원종이 아무 말 안했는데.”
“허허! 이상하네. 그 기쁜 소식을 저 엄마한테 먼저 안 하고 나한테 먼저 했네.”
기분이 좋았다.
저 엄마한테 먼저 알려야 될 기쁜 소식을 나한테 먼저 하다니
머슴아들은 커가면서 확실히 아버지쪽으로 오는 것이 맞는가보다.
그 전에 애들에게 이야기 했었다.
다른 집에는 장학금을 잘도 받아오는데 우리 집에는 애가 셋인데도 어떻게 장학금 받는 애가
없냐고.
자조 섞인 소리로 애들에게 말했는데 이제야 그 소원이 성취 되었다.
금액이야 얼마 되지 않지만 장학금 받은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둘째가 받았으니 이제 고2인 저 누나와 중2인 막둥이가 이것을 보고 좀 분발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애들에게 알렸다.
“정말로요?”
좀 놀라는 표정은 지었지만 어째 탐탁하지 않은지 별 반응이 없다.
내가 뭘 더 바라겠는가?
몸만 건강하면 되지.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보다.
장학금 받아온 아들을 세워놓고 말하고 있는 자신이 놀랍다.
“원종아! 조금만 더 열심히 해. 그러면 넌 충분히 상위권에 갈 수 있어”
애들이 별 문제없이 건강히 자라는 것에 내심 고마워해야 할 내가 다시 애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아버지 역시 그런 경쟁 속에서 살아왔기에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노력하는 모든 것은 경쟁력의 밑거름이 되기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인 것을.
그리고 애들에게 덧붙여 한 마디 했다.
“사람마다 자기 운명에 주어진 공부의 몫이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인가 나머지 몫을
다해야 한다. 지금 너희들이 공부할 때는 아버지와 엄마가 뒷받침하여 그냥 공부만을 할 수
있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너희들 스스로 벌어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니 아버지, 엄마가
뒷바라지 할 때 열심히 공부해라. 이 시기를 지나고 보면 그 때가 공부하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니.”
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가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한 말을 실천하지 않으면 제 스스로 벌어서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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