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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발해 답사기(중국)

청화산 2015. 7. 25. 23:11

<6.29일>

새벽 3시 50분

모두가 새벽 잠에 젖어 있을 시간 상주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탔다.

8시에 도착한다고 하였는데 다행히 7시 40분이 되니 공항에 도착하였다.

일행들은 모두 나보다 일찍 왔기에 이미 모두 출국을 한 듯 하였다.

여건과 항공권을 받아 게이트로 가서 출국 심사를 받아 들어가니

이미 일행들은 면세점 등등에서 쇼핑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9시 50분 연길행 칼기를 타고 출발하였다.

우리가 도착하는 연길은 한국과 1시간 정도의 시차가 난다.
한국보다 한시간이 늦다.

연길은 길림성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이곳에 조선족이 70만명이 산다고 한다.
연변 자치주 전체에는 220만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단다.
연변 자치주는 한글도 같이 중국어와 병기해서 사용하고 있다.

거리 간판에는 중국어와 한글로 같이 병기해 놓아서 중국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와 똑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우리 조상들이 살던 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의 동북 공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빼앗아 간 그 현장에서 4박 5일의 일정이 잡혀 있다.

조선족 가이드에 따르면 중국은 빼앗아간 역사를 유네스코에 등록하였다고 한다.
아프다 힘 없는 국가의 현실을 보면서........

 

 

13시 45분경에 대성중학교에 도착했다.

이상설 서전서숙 등 역사교과서에 이미 배워 알고 있었던 애국지사의 산실이었던 곳

일제하 민족의 혼을 깨우기 위하여 학교를 세워 큰 꿈을 꾸도록 했던 이곳 

지금은 관광코스로 되어 있어 한국인들이 올 때마다 모금함에 돈을 넣어준다고 했다.

그 돈으로 이곳을 관리하는 비용으로 쓴다고 했다.

가이드의 해설을 듣고 그 때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가슴 속에 새기며 밖으로 나오니

슬픈 역사의 눈물인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정에도 없던 비 아닌가?

우기가 닥친 것인가?

장마전선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왔는데 벌써 이곳까지 올라왔는가?

내일 백두산 일정이 걱정된다.

그러나 중국비를 맞았다.

언제 또 다시 중국비를 맞을 기회가 있을지 알수가 없기에...
역사의 한 서림을 풀어재끼는 현장
우리들에겐 그것이 씻김 굿처럼 느껴졌다.

14시 40분에 윤동주 생가를 방문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 전문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문익환 목사와같은 동기생이라고 했다.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던 시를 배웠기에 애국시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이곳에 와서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

윤동주 시인이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옥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일본의 생체실험 때문에

병을 얻어 사망한 것이라고 했다.



생가 답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인 청산리 대첩비 현장으로 가는 길

나즈막한 산들이 구릉을 만들며 끝없이 이어지는 대륙, 삽만 들면 모두가 농지가 될 수 있는 땅
한편으로 대단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만주 벌판은 우리의 역사의 주무대가 아니었던가?

쪼그라든 지금의 현실을 보면서 힘을 길러야된다고 다짐해본다.
해란강을 지나는 길, 여기가 북간도라고 했다.

북간도는 우리의 역사다.
청일 전쟁 후에 중국과 일본의 간도협약으로 빼앗긴 우리의 땅이다.

박경리씨가 쓴 토지에도 나오는 북간도의 지명, 용정을 버스안에서 설명을 들었다.

일제치하의 모진 압박을 피해 이곳 북간도까지 와서 생활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

실제로 현지를 답사해보니 일제 치하 모진 삶을 살은 조상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해란강이 보였다. 생각보다 별로 크지가 않았다.

음악 시간에 노래를 부르면서 익혔던 가사속의 해란강 일송정의 푸른 솔은 보이지 않았다.

작은 정자가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는 버스 안에서 다 같이 함께 선구자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역사를 더듬어면서 고민을 키웠다.

궁금증이 밀려왔다.

이렇게 크고 넓은 땅을 두고 왜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한반도로 이주해 왔을까?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아마도 이 여정이 마무리 되는 날 그 해답을 알 수 있으리라.

 

 

 

16시50분 청산리 대첩비다.
구불구불한 산 속 길을 가로지르며 비포장 길을 두 시간을 내달려 왔다.
이곳은 평소에 오기 힘든 통제 장소란다.
다행히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음은 천행이리라.
촉촉한 비는 오후 일정에 계속 따라 붙어 다닌다.
조금이라도 빛을 내주면 좋으련만
그래도 괜찮다.
일정에 차질이 생길 정도는 아니니..
일본군을 섬멸한 현장
역사 속의 총성은 멎었지만 그때의 승리의 함성이 들리는 듯 하다.

 


김좌진 장군의 딸이며 국회의원인 김을동씨가 돈을 내어 지은 전시관이 있었다.

그러나 관리가 되지 않아 흉물처럼 버티고 있다.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민족의 자존감을 짓밟는 기분이다.
국민의 성금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정을 마치고 다시 뒤돌아 가는 시간 거의 두 시간을 달려 포장길로 나왔다.
아직도 해가 지지않고 있다.
비구름 사이로 노을이 내리고 있다.
장관이다.
그 모습을 서서 찍고 싶지만 버스는 목적지로 빨리 가고 싶은지 쉼 없이 달렸다.

금수산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정해진 식당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식당에는 곰취 같은 산나물이 나왔는데 내 입맛엔 딱 맞았다.

 

 

<6.30일>

지금 시간이 오전 3시 53분이다.
그러나 느낌은 오전 5시 반 느낌이 든다.
잠은 선잠이 되어 어둠의 깊이를 재며 2시 반쯤 깼는데 너무 훤하다.
이곳은 낮이 더 빨리 오는 지역인가?
비는 그쳤고 살짝 구름이 꼈는데 오늘 꼬옥 천지를 볼 수 있기를 빌어본다.

금수산 호텔에서 호텔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나니 날씨가 잔뜩 흐려있다.
천지를 볼 수 있을까?
백두산 가는 길에 다시 뭉게 구름 낀 하늘이 보인다.
이런 날씨라면 볼 수도 있을터 기대를 해본다.

 

셔틀버스 타는데 오니 8시
날씨가 선선하다.
산 정상은 춥다고 하기에 약간 두꺼운 옷으로 갈아 입었다.
햇빛이 보기 좋고 하늘이 맑다.

허허 웃음이 입가에 걸린다.
백두산 가는 길 입구에 다다르니 저 멀리 백두산 등성이 보인다.
오늘 대박이다.
오늘 백두산을 찾은 사람들은 참으로 운 좋은 사람들이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 두장의 표를 끊었다.
한장은 120 위앤 또 한장은 80 위앤,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평일 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셔틀버스로 중간 지점까지 가서 봉고 버스로 환승했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상 부근에서 내리니 장관이다.
모두가 감탄을 쏟아냈다.
그래 언제 다시 이곳을 올지 모르지만 하늘이 도와주시어 오늘은 최고의 날이 될 것 같다.

 

사진을 파노라마로 담았다.
처음엔 몰라서 실패를 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성공했다.
찍은 것을 보니 아마츄어치곤 걸작이다.

중국 땅 건너편 북한 지역의 천지 부근에 군 초소가 보인다.
남과 북이 통일 되었다면 굳이 비행기를 타고 중국까지 오지 않았어도 되었을 턴데......
안타깝기만 하다.
또 다시 가슴 속에 긴 서러움이 자리 잡는다.
통탄의 눈물도 같이 익는다.

 

저 북간도부터 백두산은 엄연한 우리의 땅이 아니었던가?
청일간의 간도 협약으로 빼앗기고 이제는 동북공정의 중국 정부시책에 의해 장백산으로 바뀌어 있다.
만주족이 장백산으로 불렀기에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이제는 장백산으로 자리잡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 속의 비극은 우리의 힘으로 평화적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힘을 회복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못하면 후대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금의 우리가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나는 백두산을  본 즐거움도 컸지만 한편으로 더 큰 슬픔이 자리잡았다.
서글픈 민족의 힘이여!
쪼그라든 민족의 힘이여!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회복할 수 있는 힘 바로 국력을 길러야 한다.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길 하나하나의 장면이 걸작이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반사적으로 눌렀지만 얼마나 좋은 작품이 될지 모르겠다.

 

봉고버스로 내려와서 비룡폭포로 갔다.
중국에선 장백폭포라고 부르는데 아주 장엄했다.

 

폭포를 구경하고 녹윤담을 보았다.
이 정도 절경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있기에 별 감흥이 없다.

이제는 오늘 일정을 거의 다 소화했다.
이제는 숙소로 달려가는 길
낮은 구릉은 곡창지대였고 한없이 달려도 비슷한 풍광이었다.
6시간을 달려야 하는 길
술이 아니면 지칠 듯 하다.
가방속에 있는 소주 팩을 꺼내서
단숨에 몇잔 드니 기분이 더 없이 좋다.
그렇게 달리면서 두번의 휴게소 아닌 휴게소에 들렸고 이제는 숙소까지 단숨에 달린단다.
버스도 지친 일정으로 비틀거린다.
거의 8 시간을 달려 길림성(지린성) 통화시 만통대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방안에 냄새가 나고 모기까지 있었다.
오늘 일정이 강행군이었는데 오늘 밤은 다시 이놈과 싸워야 되는지............
몸은 피곤에 지쳐있는데 걱정이다.

<7.1일>

문화유적 답사

이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다.
강행군이지만 즐겁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는가?

 

아침 8시 10분에 출발했다.
두 시간을 달려 집안에 도착 했다.
정면에 보이는 민둥산이 북한이란다.
산에 나무가 없다.
얼마나 핍박한 삶인지...불쌍하다.

 

광개토대왕 비석을 보았다
호태왕비라고 되어 있으며 콘크리트 누각 구조의 보호시설을 해놓았다.
고대사에 있어서 일본이 비문을 조작하며 역사를 왜곡시켰던 호태왕비를 보니 감격스럽다.

 


만주 벌판의 대륙을 휘잡으며 호령했던 강대국 고구려
그 위상은 어디가고 저 웅대한 호태왕 비, 그리고 장군총, 5호 고분묘만이 그 시대의 흔적을

알려주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배제 되었던 고구려사는 중국 역사에 편입되고 소수민족으로 표현되고 있는 관광안내문을

보며서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압록강변에서 먹었다.

압록강!

한강처럼 엄청난 강이라고 생각하였다.

아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내가 살고 있는 고향의 하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강의 폭보다 반도 안되는 그런 강이었다.

강 건너편은 북한의 모습이다.

삶이 팍팍하다는 것은 벌거벗은 산을 보면 누가 보아도 알 것이다.

2004년 금강산 갈 때 그 때도 이랬것만 북한의 경제사정은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압록강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압록강의 규모를 보면서 또 하나의 의문을 품었다.

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반도의 역사라고 제단을 했을까?

압록강이 저렇게 작은데 무슨 반도의 역사라고 제단을 했을까?

왜? 누가? 무엇때문에 그렇게 제단 했을까?

우리나라는 대륙과 붙어 있는 나라이지 반도의 나라가 아닌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제시대 역사를 연구했던 "조선사 편수회"의 영향이 큰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함부로 제단 했을까?

일제 청산도 없이 그대로 답습한 우리의 역사

그 밑에 있던 학자들이 해방이후 우리나라의 주류 사학자가 되어 우리나라가 기준이 아닌

일본의 기준으로 우리의 역사를 썼었고

그렇게 왜곡된 역사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체성도 없는 민족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사에 무감각 했다. 

그 역사를 배운 내가 한심스럽다.

내 기억 속의 잘못된 역사를 지우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그들은 자기들만의 기득권 때문에 자신의 학설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역사를 오염되게

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관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 나를 일깨워준 책이 있었다.

"환단고기"이다.

진실성이란 것에 반대의 이론도 있지만 그래도 민족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역사책이라고

보인다.

나는 바란다.

새로이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의 후손들이 잘못된 역사를 똑바로 고쳐놓기를......

자기들 입맛대로 쓴 역사를 찾아서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밝혀주기를.......

 

마지막 일정까지 마무리 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의 운이 다했는지 일정을 마무리 하지 못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그 분들에게 이글을 바치며  마무리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안히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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