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빨리도 간다.
이제는 얼굴 주름이 하나둘씩 잡히고 축 늘어진 목주름이 인생살이 힘듦을 보여주고 있다.
어차피 세월가면 떠나야 할 판에 주름 늘어나는 것을 보고 인생을 논하고 있으니.......
세월 그 놈 참 무섭다.
긴 듯 짧은 듯 하지만 뒤돌아보면 참 무섭다.
눈 깜짝할 사이처럼 빠른 것 같다.
인생의 길이를 논해서 무얼 하겠냐마는 그 짧은 순간에 그래도 작은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 인생이지 않나 쉽다.
인생 한 평생 살아봤자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인생은 대물림을 통해 인류는 새 역사를 만들며 내일로 내일로 가지 않나 쉽다.
대물림 그것 참 살아보면 어렵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님 물려받음이다.
내가 주도한 삶이 아니기에 그냥 물려준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 대물림의 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풍족한 삶을 만드느냐 아니면 더 궁핍한 삶을 만드냐는 현재의 내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 지금의 나의 현실
대물림 된 현실에서 모질게 살아온 결과 그래도 살만한 부족하지 않은 삶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살아왔었다.
그래서 비참하지 않았고 당당했었다.
하지만 나의 당당함을 비참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저녁 퇴근 무렵이 가까워 지는 시간(2016. 1.20)
전화가 오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일까? 인사 차 오는 전화인가?'
전화를 받았더니 이건 내 속을 후벼파는 전화였었다.
눈썰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막둥이가 다쳤다는 것이다.
달려 내려오던 눈썰매에서 어린아이가 부모의 잘못으로 튀어 나왔고 튀어나온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막둥이가 달려들어 막았는데 위에서 내려오던 눈썰매가 막둥이를 쳤고
막둥이는 넘어지면서 의식을 잠깐 잃었다고 했다.
ct를 찍고 했지만 큰 탈은 없으며 턱을 부딪혀서 얼굴이 좀 부어있으며 집에 데려다 주고
왔다는 전화였다.
눈 앞이 캄캄하였다.
통화를 하면서도 화도 낼 수도 없기에 괜찮겠지요 하며 전화를 끊고 퇴근을 하였다.
눈썰매장에서 일 잘한다고 칭찬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
무척 마음이 걸렸다.
퇴근 하면서 마누라한테 전화를 하였다.
마누라는 집에 와있었고 막둥이한테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했다.
집에 들어오니 막둥이는 저 방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누워있는 막둥이한테 다가가서 이마를 만지면서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턱만 좀 그렇지 괜찮아요."
짧고 퉁명스레 말하는 아들을 보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일어서는데
스글픈 감정이 물결처럼 일었다.
애비가 돈이 없어 자식을 저래 내몰아 사고가 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갑자기 가슴이 턱 받히면서 눈물이 글썽거리는데 마누라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수종아! 너 아빠 운다. 울어."
애비가 넉넉하지 못한 죄책감이 눈물로 표현된 것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애들 3명 교육 시키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저 누나나 형이나 아르바이트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고가 없었기에
사회경험도 일찍 해보는 것도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치부해 왔었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나니 아니었다.
부족한 아버지로만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내가 돈이 많았다면 막둥이를 저리 추운 계절에 생업 현장으로 몰았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대물림에서 그나마 노력을 해서 많은 것을 변화시켜 왔지만 아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그런 부는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는 시간 밥상에 앉은 아들은 턱이 아파서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이다.
먹고 싶은 피자가 있는데 억지로 저 엄마가 떼어주는 작은 조각을 먹는 것이다.
혹 막둥이 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천운이었을까 막둥이는 다음날 큰 변화가 없었다.
아픈 턱도 조금 진정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뇌진탕 휴유증이 있을지 모르니 오늘 하루는 집에서 푹 쉬라고 하였다.
출근을 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맘을 졸였지만 더 이상 문제는 없었다.
막둥이가 다시 알바하는 것이 맘에 걸려 알바를 그만두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내일 출근할 거라고 했다.
확신에 찬 막둥이의 말을 들으면서 움추렸던 맘을 펴본다.
막둥아 고맙다.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지나가서......
너도 언젠가 아버지가 될 것이다.
아버지도 너희를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왔지만 너 역시도 열심히 살아서 좀 더 나은
대물림을 해주기를 바란다.
너의 할머니가 물려주신 대물림에서 아버진 더 나은 대물림을 만들었지만 부족한게 많은 건
사실이다.
인생을 그냥 사는대로 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살아 지금의 아버지가 있다고 자부해본다.
막둥이는 아버지가 이루어낸 그 보다 더 좋은 대물림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