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들

칡넝쿨 채취

청화산 2009. 12. 28. 18:13

 

 

추억1 - 칡넝쿨 채취(09.12.28)

 

넉넉해진 삶 지금은 모든 것이 풍족하다.
시간은 불과 35년 정도 흘렀을 뿐인데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서부터 놀거리까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잊어진 명칭처럼 들리는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로 불림) 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1970년대에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했던 배움의 현장에 있었다.
1971년도에 1학년이었으니 연도의 끝자리수와 학년의 숫자는 같았다.
1972년도에는 2학년, 1973년도에는 3학년 이런 식으로........

 

새마을 사업이 마을마다 한창일 때
동네 어른들의 마을 부역 현장을 목격하면서 자랐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초가집이 스레트나 기와집으로 바뀌었고, 길도 넓히고 나무

다리도 콘크리트교로 바뀌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을 때이다.
심지를 태우는 불빛과 함께 타고 오르는 까만 연기, 풍겨오는 석유냄새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들
호롱불은 칠흑 같은 어둠을 밀어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기가 들어왔다.
마을마다 전봇대가 세워지고 집집마다 전기선이 설치되더니 저녁이 되자 마을이 환하게 밝혀졌다.
세상이 환했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밖을 나가보니 집집마다 환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 만큼 내 기억엔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당시의 생활 하나하나는 모두가 추억거리였다.
다만 바쁘게 살다보니 그것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다.
잠시 어릴 적 시간으로 돌아가 본다.
그리고 그 소중한 기억을 꺼내본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가득 쏟아지는 날
마굿풀을 하기 위해 산으로 갔었다.
마굿풀은 소 외양간에 넣어주는 풀이었지만 우리집은 소가 없었다.
그래서 해온 마굿풀은 일부는 퇴비로 쓰고 억센 것은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했었다.
땔감이 부족했던 우리 집으로서는 4계절 나무를 해야 했었기에 마굿풀은 여름 한 철의 땔감이었다.

한참 마굿풀을 하다가 용케 칡넝쿨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았었다.

칡에는 두 종류의 칡이 있다.
한 종류는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덤불형 칡이 있고, 하나는 땅 바닥으로 일직선 외줄로 중간

중간에 뿌리를 내리며 크는 땅 칡이다.
하던 마굿풀을 멈추고 땅칡 넝쿨을 둥글게 감아서 채취했다.
이 땅칡은 돈으로 바꿀 수 있었다.
땅칡 한 타리 갔다 주어봐야 몇 푼 되지 않았지만 돈 한 푼이 아쉬웠던 시절의 땅칡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이 땅칡은 중비티 배씨 아저씨 집에서 사들였다.
이 동네 저 동네 수집된 땅칡을 큰 솥에 넣고 오랫동안 푹 삶았다.
그리고 푹 삶은 땅칡을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서 껍질을 벗겼고 그것을 말려서 업자에게 팔았다.
그것을 멍석이나 공예품에 만드는 것에 사용한다고 들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땅칡을 이용해서 공예품을 만든 것은 보지 못했다.
아마도 이것이 재현된다면 고급 공예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하여 나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돈이지만 나에겐 달콤한 사탕 같은 것이었다.
그 달콤함 때문에 힘든 줄 몰랐다.
그래서 즐거웠고 힘든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부족함 때문에 추억이 된 사실에 감사를 표한다.
그래도 행복했노라고.

 

요즘 산에 다니지만 취미생활로 산나물, 버섯, 약초 채취하러 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땅칡을 발견했을 때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아마도 이 땅칡에 대해서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으리라.
부족했던 일상에서 겪어야 했던 기억
지금에 뒤돌아보면 정말 소중했던 삶의 현장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온 지금
우리 집 애들을 보면 정말 호강이다.
먹을 것, 입을 것, 노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소유에 대한 행복은 상대적인 것
우리 집 애들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 때문에 다른 집 애들과 비교하며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지

모른다.
그럴수록 나는 애들을 산으로 내몰고 있다.
막걸리 한 통에 오징어 한 마리 넣어 햇볕 바른 양지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권하고 있다.
“아빠! 먼저 드세요”
“오냐!......꿀꺽, 꿀꺽.”
“자 너들도 먹어라. 쪼매만 먹어라 취한데이”
“예-에! ........꿀꺽, 꿀꺽. 아버지! 산에 오를 때 먹는 막걸리 맛이 제일 좋아요.”
‘허허허! 이 놈들 술 맛을 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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