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글 나의생각

거꾸로 가는 달력

청화산 2010. 12. 8. 22:55

 

 

거꾸로 가는 달력(2010.12.7)


모두 떠났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떠났다.

나는 혼자였다.
살갑게 대해 주던 그런 정들을 모두 잊으며 나는 떠나야 했다.

 

아니다.
내가 떠난 것이 아니라 다만 멀어진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잠시 멀어진 것뿐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때로는 가까운데서 때로는 먼데서 한 번쯤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비록 낯선 곳이지만 새로운 세계와 접하는 것이기에 낯선 여행은 때로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난 그렇게 믿고 떠났다.
그러나 떠나자마자 작동하는 회귀본능 때문에 난 하루를 셈하며 살고 있다.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것은 나만의 본능인가?
나만 그런 것인가?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하루하루를 셈하며 살고 있다.

 

며칠 전 TV 위에 올려진 달력을 보았다.
무심코 TV를 보다가 달력 칸마다 빨간 숫자가 적혀 있었다.
‘아니!  저게 뭐지? 무슨 의미인가’
가만히 달력을 쳐다보니 351, 350, 349 ......계속 한 칸씩 내려가면서 숫자가 줄어들었다.
저게 뭐냐고 마누라한테 물으니
“당신 돌아올 날 계산해 놓은 달력인데.”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빨간 글씨의 숫자는 내가 돌아올 날짜가 맞는 것 같다.
나만 셈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가족 모두가 같이 했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나는 지금 돌아올 날을 손꼽으며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당일 한 일과 느낀 점을 매일 기록하고 있다.
기록 옆에는 돌아올 남은 숫자를 기록하면서 말이다.
지금 내가 써 놓은 숫자는 가족들이 만든 거꾸로 달력과 같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 저 달력의 끝이 내가 돌아오는 날이다.
불안한 마음과 미지의 두려움을 안고 떠났던 첫 출발부터 난 거꾸로 가는 달력을 만들었고 하루하루 줄어드는 숫자를 보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된 지금 불안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은 없다.
그냥 담담히 일상처럼 잘 근무하고 있다.
주눅 들지 않고 고향의 직장처럼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상주로 가고 난 뒤에 가족들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렸나보다.
저렇게 거꾸로 가는 달력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으니......

 

돌이켜보면 지금의 선택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인생의 고비를 하나 넘기는 것이다.
저마다 삶이 다르듯이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슬픈 페이지로 남든 기쁜 페이지로 남든 내가 선택한 결과물이다.

인생에서 떨어져 나온 1년이 내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세월은 그 답을 줄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상태에서 어떤 결과를 논하기는 어렵다.
지금 내가 선택한 이 길은 현재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

대기만성이란 글귀를 곱씹으며 살아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현재에 만족하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결정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망설이고, 주저하고, 고민하곤 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 더 크게 보였다.
하지만 마음을 정하고 난 뒤에는 확실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리고 취해야 할 것이라면 과감히 취했다.

이제껏 과단성 있는 결정으로 실패를 한 적은 없었다.
실패를 하는 것은 항상 미련을 남겨두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상주로 간 지 거의 한달이 다되어 간다.
아직까지 현황 파악이 덜 되고 행정 행태가 다르다보니 서투른 것은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가면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세상사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은 아픔과 기쁨을 모두 품어버린다.
현재의 내가 겪는 것도 시간이 모두 해결해줄 것이다.
시간이 가고 나면 나는 내가 있던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다리지 않고 답답해하거나 안달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오늘 갑자기 떠오르는 노래 제목이 생각난다.
리듬은 알지만 가사도 모르는 노래 입안에서 흥얼거려 본다.
“로꾸거! 로꾸꺼!”
그래 내가 돌아올 달력은 그렇게 가고 있다.

달력을 한 번 보자. 이제 345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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