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기행기2(2012.03.24)
오늘도 배는 뜨지 않았다.
아니 버스 운전사의 말이 떠오른다.
“배는 항상 떠있지요. 올 수가 없어서 그렇지.”
쓴 웃음으로 넘겨버렸지만 마음은 벌써 집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도 자유시간을 가져야한다.
어제 약속한 대로 청송계장, 상주직원, 나 셋이서 가려고 하였지만 상주 계장이 따라붙었고 울 직원이 같이 따라붙어 다섯 명이 되었다.
대아리조트에서 도동까지 걸어가면서 행선지를 해설사한테 전화하여 정했다.
당초 도동에서 천부쪽으로 가다가 눈 쌓이고 그러면 뒤돌아오자고 하였는데 일정이 바뀌었다.
천부까지 가서 석포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가면 세 시간 정도면 저동까지 올 수 있다고 하였다.
눈길이 미끄럽다하여 도동에서 등산화를 빌려 신으려 했는데 빌려주는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는데 천부 가는 버스가 올라온다.
잽싸게 다섯 명이 올라탔다.
버스비가 1500이다.
천부까지 가는데 거의 삼십분 정도 간 것 같았다.
바다는 우리를 가두고 뭐 그리 화가 났는지 세차게 으렁거렸다.
천부에서 내려 버스 대합실에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이냐?
바람이 세차서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시 돌아갈 수 도 없는 입장
아직도 우리에게 자유라는 하루 시간이 있기에 일정을 감행하기로 했다.
석포까지 걸어가려면 5km가 넘는다고 하는데 험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거대한 파도는 뭍으로 달리며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으르렁거렸다.
울릉도에 우리를 가두면서 뭣이 그리 못마땅한 것인가?
바람은 우리의 일정을 빨리 단축시키도록 돕는 듯 뒤에서 세차게 불어주었다.
걸을수록 걸음은 빨라져 마치 뛰는 듯 했다.
해안 길로 파도는 기어이 기어오려는 듯 더욱 세차게 거품을 물며 으르렁거렸다.
이제껏 바닷가에 파도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무서움을 느끼게 만든 파도는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위협하는 듯한 모습에 우리는 위축되었다.
이것이 자연이 보여주는 사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정복할 수 없다.
자연에 덧붙여 사는 아주 미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연을 마치 정복할 수 있는 것처럼 개발을 하여왔다.
자연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우리는 동남아와 일본의 쓰나미에서 보았다.
첨단 기술도 한 순에 무력화되어 그것이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오는 현실을 보지 않았던가?
지금 해안 길로 기어오르려는 저 파도는 아주 작은 것을 보여주는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얼마를 갔을까?
산에서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보였다.
그러나 이게 무슨 기괴한 일인가?
밑으로 떨어져야할 물줄기는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마치 작은 용오름 현상을 보는 듯했다.
너무나 신기해서 뒤따라오는 직원들에게 신기한 현장을 보라고 가리켜주었다.
계속 해안 길을 따라 가면서 걷는데 크고 작은 돌들이 떨어져 있었다.
‘이래서 마을버스가 다니지 못한 것이구나.’
파도와 바람이 점유해버린 해안도로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
걷는 일행은 오직 우리뿐이다.
간간히 승용차가 다녔지만 해안도로를 완벽히 점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 일행뿐이다.
맨 처음 파도에 주눅이 들어 위축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당당히 파도를 느끼며 감상하고 있었다.
인간의 적응력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산 위에서 떨어지는 돌들을 피해 하늘을 보면서 해안도로를 걷는 길
우리의 유일한 먹거리는 장군수 뿐이었다.
오는 중간에 민가에 들러 매점을 찾았지만 매점도 없고 식당도 없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나온 대가를 오늘 단단히 치러야 할 듯싶다.
암벽에서 작은 물줄기가 새어나왔다.
머리를 대고 먹기에는 너무 땅 가까이 접해 있어서 할 수 없이 손으로 담아서 먹었다.
세찬 차가운 바다 바람에 손이 시릴 줄 알았는데 너무도 따뜻했다.
세 모금을 마셨다.
허기진 뱃속에 장군수로 채우니 약간의 허기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해안 도로 길을 따라 참으로 멀리 온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세 갈래 길에 맞닥뜨렸다.
아직 일행은 저 뒤에 쳐져 올라오고 있기에 자리에 앉아 쉬었다.
뒤에 일행들은 석포의 아름다운 장면에 빠져들었나 보다.
상선암의 절묘한 풍광을 잡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나보다.
우리보다 한참 쳐져있는 것을 보면...
파도가 갑자기 죽어든 세 갈래 길 바다는 침묵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저 멀리 파도는 세차게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이곳은 지형 때문이지 파도는 잠잠해져있었다.
갑자기 잔잔해진 분위기에 허기진 몸도 내려앉는 기분이다.
일행들이 도착했다.
어디로 방향을 잡을 것인가를 논하다가 결국 섬목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저 멀리 섬을 연결하는 큰 다리를 건너 섬을 구경해보자는 제안에 일행은 섬목으로 걸었다.
얼마를 더 갔을까?
기암괴석이 저 멀리 보이는 상선암과 어울려 절묘한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모두가 감탄하면서 추억의 장면을 담았다.
이곳의 신비로움을 멀리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을 아쉬워하면서 섬을 연결하는 큰 다리로 오니 아직도 공사중이라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쉬움을 느끼면서 해안도로 작은 터널을 빠져나오니 팔각정이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같이 온 직원이 샛길이 있다고 하면서 오른다.
많이 걸은 탓인지 청송계장님은 오르기를 꺼렸다.
청송계장만 두고 샛길을 올라가니 앞서간 세 명이 밭에서 뭔가를 뽑고 있었다.
겨우내 묵었던 무였다.
윗둥이를 보니 파랗고 성한 것을 골라 흙을 대충 닦아내고 껍질을 입으로 베어내고 먹었다.
밑둥이 하얀 부근의 무는 바람이 들지 않아 아직 먹을 만 했다.
우리의 여정이 아직 7km 남아있기에 아무런 먹을 것이 없는 현실에서 이것은 중요한 양식이었다.
연거푸 두개를 먹고 나니 그래도 허기가 없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현실에서 남아있는 무를 더 뽑아서 직원 배낭에 채웠다.
무로 배를 채우면서 정상에 오르니 섬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쉬움을 안고 내려와서 해안도로를 걸으니 마지막 종점이 나왔다.
그런데 저 멀리 식당이 보이지 않는가?
와 살았다고 소리치며 가까이 가는데 승용차 한대가 나오고 있었다.
식당 하냐고 물으니 문 닫은 식당이라 했다.
이제는 산길을 타고 올라가야 할 형편
청송계장은 발이 아파 더 이상 걷기가 힘들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달라 부탁하여 승용차에 태워드렸다.
뚝 끊긴 해안도로는 저 암벽을 뚫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4.5km 구간이 여기인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길
일행을 하나 띠우고 석포 전망대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950미터 남았다고 하는 이정표를 따라 오르는 길
곳곳에 난 부지깽이 나물을 뜯어 일행에게 주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니 땀이 쏟아졌다.
손에 낀 장갑으로 땀을 훔치면서 산 정상 부근 오려는 쯤에 전화벨이 울렸다.
석포까지 왔는데 버스가 없단다.
우리가 도착하는 곳이 어디냐고 묻길래 석포 전망대라고 이야기하고 끊었다.
한참을 오르니 민가가 보이기 시작했고 갈래 길에서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큰 길로 가는 것이 맞을 것 같아 나아가니 차가 다니는 큰 길이 나왔고 석포 교회가 보였다.
다시 청송계장한테 전화를 했다.
어디냐고 물으니 석포 교회부근 현장 감독실에 있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석포교회라고 했더니 교회 맞은편 현장 사무실에서 청송계장이 나왔다.
우리 일행 모두가 현장사무실로 들어갔다.
안용복장군 기념관을 만드는 우진건설 현장사무소이다.
들어서니 커피를 내어왔다.
배고픈 차에 먹는 커피 맛이 일품이다.
현장소장은 안동이 고향이란다.
그래서 고향 사람이라고 우릴 반겨주었다.
현장 사무소 식당에 우리가 먹을 밥을 부탁했는데 때가 지났다고 해서 줄 수가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라면이 있는데 끓여 드실런지 물었다.
모두가 환영을 했다.
라면이 꿀 맛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 먹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지 무와 물로 허기로 때웠던 차에 든든한 라면은 그야말로 천금의 행복이었다.
그곳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소장이 석포 전망대까지 태워주었다.
지쳐있을 즈음 허기를 아주 요긴하게 때웠고 산길을 걸어 올라온 아픈 다리에는 참으로 중요한 휴식을 준 것이다 .
크나큰 도움으로 우리 일정은 더욱 단축되었다.
이제부터는 산길을 따라 저동으로 가야한다.
여기서부터 최소한 5km이상을 가야 우리의 목적지가 나온다.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응달진 곳에 잔설치고는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다.
신발을 준비 못했던 일행은 달팽이처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갔다.
뒤따르는 나도 갑자기 느려진다.
앞사람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산에는 명이나물 순이 올라오고 있다.
하나를 따서 씹어 먹어보니 입안에 마늘향이 가득 돈다.
가면서 짓궂은 일행하나가 눈싸움 시비를 걸었다.
맞은 사람도 던진 사람도 즐거운 시간이다.
어릴 적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배가 오지 않아 머문 울릉도에서 울릉도의 맛있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가슴에 머문 걱정은 어느 듯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빽빽한 동백나무 숲이 계속 되었다.
어제 걸은 오솔길은 대나무 숲이 대부분이었는데 여기는 동백나무가 가득하다.
빨갛게 핀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있어도 색깔이 아주 곱다.
어제 문화관광해설사님께서 이야기 해준 꽃말이 빙빙 돌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산등성이를 따라 걷고 걸었지만 아직도 남은 여정이 많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산등성이 허리춤을 쳐다보니 금방 목적지까지 도착할 것 같은데 생각과 달랐다.
오솔길은 새로운 산등성이 허리춤을 따라 산 위로 지그재그 식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얼마를 올랐을까?
산등성이에 올랐다.
많이 걸은 탓인지 종아리가 뻐근하다.
조금 쉬면서 풍광을 즐기던 차 산꼭대기 내수전 전망대에 오르자고 했다.
아직도 여정이 많이 남은 듯해서 힘을 비축하고자 머뭇거렸다.
일행들이 올라가고 나니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혼자 있기도 뭐해서 산꼭대기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다.
그러나 세찬 바람이 전망대에 머무려는 시간을 짧게 만들었다.
저 멀리 바다의 풍광을 눈에 넣고 기념사진으로 흔적을 남기며 내려왔다.
이제 내려가는 길
이곳까지 차가 올라오는 임도 길 같은 길이다.
가파른 경사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다.
아픈 다리 근육을 풀기 위해 뒷걸음으로 걸으면서 내려왔다.
이제 저동 항구까지 가까워진 듯하다.
마을 민가가 많이 있는 곳에 내려오니 버스 승강장이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은 듯하여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걸었다.
모퉁이 돌아서니 저동 항구가 들어왔다.
태풍을 피해 정박해 있는 오징어잡이 배가 저녁 햇빛에 반짝거린다.
항구의 아름다운 풍경이 작은 감탄과 함께 머리 속에 저장된다.
아름다운 울릉도의 속살을 헤집으며 걸었던 오늘 일정이 모두 끝나는 시간이다.
분명 내일은 배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으면서 마무리 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짧은 시간 동안 보고 느꼈던 울릉도의 모습
가파른 곳에 터를 의지해 사는 울릉도의 이국적인 모습이 어느새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언제가 다시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오고 싶다.
그 때 다시 온다면 기어이 성인봉을 구경하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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