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고 난 새재의 겨울은 추웠다.
녹다만 눈과 함께 부는 새재의 바람은 귀가 얼 정도로 차가웠다.
산 정상에 하얗게 쌓인 차가운 기온을 모두 새재계곡으로 쏟아 붓고 있어서인지 단단히 준비해서 입었건만 등산복 주머니
속의 손이 곧을 정도였다.
손이 차갑게 느껴져 잠바 주머니에서 바지주머니로 손을 옮겨 넣었지만 효과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체온이 떨어지니 마음 한 구석은 더 시린 것 같았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 신이 나고 흥이 나야 할 텐데 가슴 한 구석이 이리 시린 까닭은 무엇인가?
다가올 때를 알기 때문인가?
세상사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법
또 하나의 자식이 둥지를 떠날 예정이다.
올해 초에 나의 예쁜 맏이를 둥지에서 떠나보냈는데 내년이면 또 한 마리의 새가 나의 둥지를 떠난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변하게 마련이지만 또 한 마리의 새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시리다.
둘째까지 떠나고 나면 텅 빈 공간이 자리할 텐데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남은 세 명이 5명이 있을 때처럼 살아야 하는데 막둥이가 그 역할을 잘해줄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누라의 빈 가슴에 내가 아들 몫까지 채워줄 수 있을지........
아마도 마누라는 또 눈물을 찔끔 짜낼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내가 그 눈물을 웃음으로 바꿔줄 수 있을지 고민을
좀 해야 할 듯하다.
오늘 둘째와 문경새재를 갔었다.
아르바이트 문제와 인사도 할 겸 동행을 같이 했다.
오랜만에 아들과 둘이서 걷는 새재의 길은 그 동안 못다 한 대화의 시간이었다.
단 둘이 만날 시간이 어디 있었는가?
거의 없었다.
비록 차가운 바람이 부는 새재길이지만 둘이서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것은 더 없는 좋은 시간 아닌가?
모처럼 둘만의 시간 속에서 그 동안 소원했던 부자지간의 정을 살려볼 참이다.
둘째는 겨울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으로 있다.
아는 지인을 통해 자리를 마련하였지만 잘 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아들한테 아르바이트 할 때 성실하게 일을 잘 하라고 일러주었다.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말고 그 직장의 일원으로서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잘하라고 했다.
그것이 아버지를 욕 먹이지 않고 아버지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르바이트 할 때 얼마나 잘 실천할지 모르지만 평소 인성으로 봤을 때 잘 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어찌될지 모르기에 미리 교육 차원에서 알려주었다.
어릴 적 머리 갈기를 세우고 “아빠! 아빠!”하며 아장아장 걷던 게 어제 같은데 이제는 나보다 키도 커고
의젓한 성년이 되었다.
아직도 모든 것이 내 눈에 차지는 않지만 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 둘째가 역시 부산으로 간다.
저 누나를 뒤따라가는 것이다.
수시 시험에 여러 대학에 응시를 했지만 내 욕심에는 둘째도 맏이 공주가 있는 부산으로 가는 것을 원했었다.
그래야만 내가 편하기도 하고 누나인 맏이가 제 동생인 둘째를 잘 돌볼 수 있으리란 생각에
발표나기 전까지 가슴을 졸였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던지 합격을 하였다.
그러나 대학을 간다고 해서 인생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가서 빈둥빈둥 놀고 나와서 다시 취업 공부하는 경우도 생기기에 내심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물었다.
“그래 넌 대학가서 뭐 할 거냐?”
“저는 대학 1학년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전과를 하고 싶어요.”
“전과? 아니 무슨 과로?”
“생명공학과로 가고 싶어요. 가서 국과수 같은 데나 연구기관 같은데서 근무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든든했다.
남들은 대학시절 어영부영 하다가 취업 문제로 고생을 하는데 그래도 둘째는 확고한 목적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나라의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학은 어렵게 들어가면서 나올 때는 쉽게 나온다.
외국 대학은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엄청나게 어려운데 우리나라는 정 반대이다.
그러니 대학의 질은 당연히 떨어지는 것이다.
그 까닭으로 다시 취업 재교육을 받게 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대학 시스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아들에게 다시 한마디 일렀다.
“대학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한 것이 중요한 거다. 우리나라는 뭔가 잘못되었다.
우리나라 대학도 이젠 바뀌어야 된다.”
아버지의 말을 침묵으로 듣고 있던 아들, 아마도 각오는 단단히 다졌으리라 본다.
대학생활에서 인생의 진로가 좌지우지 되는 시기기에 그 시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으로 자기의 인생길을
잘 찾아가리라고 믿어본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무작정 2관문까지 올랐는데 땀이 맺혔다.
그러나 아들은 땀도 흘리지 않는다.
“울 아들 걸음걸이가 엄청 빠르네. 아버지가 따라가기가 벅차네.”
“아빠 저 모전 독서실서 집에까지 오는데 20분 만에 와요.”
‘모든 것이 어리고 어설프게 보였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나를 넘어서고 있구나.’
나를 넘어서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아니 얼굴도 미남이고 훌륭하게 보였다.
자기 자식 안 예쁜 사람 어디 있겠냐마는 오늘 따라 더 훌륭하게 보였다.
오늘 아들과 걷는 이 시간은 나에게나 아들에게나 소중한 시간이다.
역사의 흔적처럼 아들의 기억에 박혀 있기를 바라면서 2관문에서 사진을 찍었다.
눈 쌓인 2관문의 모습은 성벽과 조화를 이루면서 환상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그 장면의 주인공은 울 아들이다.
사진을 찍고 나니 내가 보아도 엄청 잘 나왔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사진을 부탁 좀 하려마는 주위엔 사람이 없었다.
혼자만의 사진을 남기면서 지금의 이 모습을 머릿속에 남겨둔다.
그리고 그 기억이 언제가 아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나리라는 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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