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글 나의생각

화장을 하는 남자

청화산 2009. 2. 13. 17:29

화장하는 남자(2009.02.13)

 

나도 나이가 먹은 것 같다.
무심코 쳐다보는 거울에서 인생의 무게감이 보인다.
머리는 하얗게 쉰지 오래되었고 눈가에 주름살도 많이 보인다.
자꾸만 무거워지는 주름살 무게 때문에 나도 이제 관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요즘 잠자리 들기전 씻고 난 후에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했다.
머리는 하얗게 쉬었어도 아직까지 동안인지라 밤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들어 굳센 의지로 매일 화장품을 바르고 있다.

 

어느날
거울을 쳐다보며 화장품을 바르고 있는데 늦게 씻고 나온 마누라가 나를 쳐다보며 내뱉는다.
“아니! 생전 화장품 안 바르더니만 요새 왜 그렇게 발라? 당신 애인 생겼어?”
마누라의 갑자기 쏟아진 엉뚱한 말에 나는 너무 황당했다.

 

“허허! 이 사람이! 애인이 생기야 바르나? 나도 좀 젊어질란다. 왜?”
말을 해놓고 보니 마누라의 의심섞힌 말이 가슴에 박힌다.
‘아니! 이게 진짜로 날 의심하는게 아니여. 신랑을 뭘로 아는거여.’
갑작스런 마누라의 말에 내 몸에 사슬이 생겨 난 것 같다.
나를 꼼짝못하게 하려는 마누라의 보이지 않는 사슬. 너무 무섭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다.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호기심은 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인생의 무게감에서 잠시 일탈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화장하고 향기나는 남자가 되고 싶은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다.
동안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이다.

그러나 마누라는 아직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왜 화장품을 바르는지 그 이유를.

 

내 나이 이제 지천명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몸에서 노인네 냄새가 나는 나이가 되었다.
삶의 찌든 때가 덕지덕지 묻어나기 때문에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노인네 냄새일지라도 그것은 내 인생의 향기이다.

그러나 향기는 상대적인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나에게 향기일지 몰라도 맡는 사람 입장에선 향기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마누라는 바보다.
내가 애인한데 잘 보이려한다면 낮에 화장을 하지 밤에 하겐나.
밤에 화장을 하면 그 향기는 모두 마누라한테 가는데.
마누라는 그것도 모르고 나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다.

 

슬픔이 베인다. 그리고 두렵다.
저 상태가 혹시 의부증의 초기 증세가 아닌지?
나도 화장하여 향기나는 남자가 되고 싶은데 마누라의 말 때문에 망설여 진다.
화장을 하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러면서 마누라가 한 말이 농담이기를 빌어본다.
나는 화장을 해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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