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글 나의생각

홍콩 나들이

청화산 2009. 6. 24. 09:21

 

 

홍콩 나들이(2009.06.09)


내일 아침 7시까지 김해 공항에 도착해야 하기에 구포역 근처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비 내리는 밤
도로에 달리는 차 소리는 짙은 어둠을 뚫고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잠자리를 바꾼 까닭인지 잠은 오지 않고 뒹굴수록 머리 속에 갖가지 생각들이 들어선다.
애써 잠을 청하고 있지만 아마 오늘 잠자는 것은 무척 힘들 것 같다.

 

오후 3시에 시청을 나서며 홍콩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아침 집을 나서며 긴 여정으로 떨어져 있음이 못내 안타까운 마누라, 공주, 아들 두 놈을

안아주면서 헤어졌다.
뒤돌아서며 발길을 옮기려하니 섭섭함이 밀려왔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가장 아쉬운 것은 혼자만 해외를 가야하는 미안함이

덮쳐왔기 때문이다.

 

마누라의 잘 다녀오라는 말 속에 진한 걱정이 들어 있었다.
몸조심하고 아프지 말고 잘 다녀오라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내 가슴 속에

커다란 죄의 덩어리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애들 역시 나를 배웅하며 웃음을 지을 때 나의 가슴엔 울먹임이 올라왔다.
그래 이것이 가족이고 함께 있음이 행복이었구나.
그래 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웃으며 돌아오리라.

 

집 나온 내 마음을 아는지 흐려있던 하늘은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비를 붓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구포 역 근처로 가는 길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부산을 떠나온 지 건 23년이 되었는데 많이도 달라졌다.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방향을 감지할 수 없었다.
도시는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깨어났지만 굵어진 빗줄기에 많이도 흔들렸다.

 

멍하니 바깥에 시선을 두고 가는 길
궂은 날씨 때문인지 마누라가 더욱 걸렸다.
내 혼자 홍콩을 가야함이 정말 정말 미안했다.
나는 미국·캐나다, 중국, 이번에 홍콩을 가면 세 번째 해외 나들이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마누라는 아직 한 번도 외국을 가보지 못했다.
내가 공무로 해외를 갔다고 핑계를 될 수도 있지만 마음 한편의 미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그래 돈이 조금 모이면 꼭 한 번 가리라.
마누라와 같이 꼭 가리라.

 

누가 이야기 하더라.
젊었을 때 같이 여행을 하라고.
늙으면 다리 아파 걷지 못하고 잘 보이지 않아 즐거움도 떨어지리니 더 늙기 전에 가보라고.

그래 꼭 가리라.
가진 것이 부족하면 마누라가 고추 꿰매서 번 돈, 코일 감아서 번 돈 모두 긁어모아서 가리라.
이마저 모자라면 마누라가 상점에서 일해서 번 돈

조그만 회사 나가 번 돈 모두 모아서 가리라.
그래도 모자라면 빚을 내서라도 가리라.

 

마누라가 더 늙기 전에 마누라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내 좋아하는 술도 줄이리라.
차도 덜 타 기름 값을 아끼리라.
티끌모아 태산이라는데 하다보면 모이겠지.
혹시 아나.
내 인생사에 로또가 있을지.

 

그러나 가겠다는 결심이 굳어질수록 핑계를 되고 있는 나 자신에 놀랍다.
돈 모이면 가겠다는 것은 다 핑계이다.
가려면 당장 계획을 잡아 금년 안에 뿌리를 뽑아야지 어느 세월에 돈 모아 가겠는가?

그렇다고 로또가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엔 돈에 대한 로또는 없는 것 같다.
단지 돈 로또보다 마누라 로또는 있는 것 같다.
내가 행복을 느끼며 홍콩으로 가는 것은 바로 마누라의 헌신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일이면 출발한다.
잠은 포기했다.
딩굴며 딩굴며 시간을 재촉하면 새벽은 열릴 것이다.
그러면서 두 가지의 홍콩을 생각하며 각오를 다진다.

 

긴 여정의 끝에 집으로 오는 날 난 홍콩 갔다 왔음을 고하며
마누라를 홍콩으로 보낼 것이다.
뿅 가도록...........

공무국외귀국보고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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