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생각(2012.08.10)
세월이 지나도 어쩔 수가 없나보다.
여름이 기성을 부리는 이 시기만 되면 재발되는 피붓병처럼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머님 생신이다.
어머니 생신은 여름 휴가가 가장 절정인 때에 있었다.
그래서 어머님 살아 계실 때 다른 곳으로 휴가 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여름 휴가는 당연히 고향에서 어머니 생신을 보내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여름 휴가를 가려면 당연히 어머니 생신을 보내고 난 뒤에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시들어진 바닷가를 잠시 갔다오는 것으로 때웠었다.
그러나 어머님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이젠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자유스런운 휴가를 보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못내 마음 속엔 어머님의 생신이 떠오른다.
어머님 떠나신지 4년이 지났지만 매년 되살아나는 기억 때문에 어머니를 만난다.
잊을수 없는 회귀본능처럼 나의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다.
때만 되면 자동으로 기억이 떠올라 어머니를 찾는다.
오늘은 어머니 생신일이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어제 바로 휴가를 신청했다.
오늘 나 혼자만이라도 어머니를 찾아가서 술 한 잔 붓고 오고 싶었다.
차를 몰아 농암 대정 숲 가게에서 은자골 막걸리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샀다.
산소에 다다르니 개울 옆 덤불이 우거져 오르는 길이 거치적거린다.
가져간 낫으로 덤불을 자르는데 벌레 같은 것이 날으는 것 같았다.
순간 넓적다리가 통증이 심할 정도로 뜨끔하다.
'벌이다. 벌집을 건드렸구나. 튀자.'
그래서 물을 건너 반대편으로 와서 살피니 개울 뚝에 땡비 집이 하나 보인다.
벌들이 벌집 주변을 선회하고 있기에 할 수 없이 시간을 지체하여 조용히 산소로 올라갔다.
벌집을 지나면서 한 편으로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해본다.
이건 우리 엄마가 날 혼내려고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술 많이 먹지 말고, 남들 많이 도와주고, 높은 사람들과 다투지 말고, 애들 잘 돌보고
그리고 일상의 기준을 깨지 마라고 하셨는데 ...........
살펴보니 어느 것 하나 어머님 맘에 드는 것이 없다.
오늘 맞은 벌침은 나에겐 약이 되리라 믿는다.
잠시 나간 일탈된 정신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벌침이라 생각된다.
아니면 그 귀한 아들에게 벌침을 놓을리 만무하시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당신 생일 챙기려 오는 아들을 벌침으로 벌하는 어머님이 있겠는가?
분명 나에게 의미있는 벌침이라 생각된다.
오랜만에 찾은 산소는 잡초가 우거져 있다.
잔을 붓고 남은 술을 마시면서 어머니 생각을 떠올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생을 살다가신 어머님
아버지 없는 8남매 자식을 위해 전 인생을 바쳤는데 호강 한 번 못하고 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자식들 걱정하시면서 돌아가셨는데........
살아 생전에 못다한 회한이 밀려온다.
그래도 눈물이 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모진 것인가? 아님 이제는 눈물이 메말라서인가?
그래서 막걸리 한 잔을 벌컥거리며 들이켰다.
가슴에 술이 드니 어머님의 기억이 더욱 애처롭다.
눈물이 영그는 것 같았다.
울먹거리는 마음을 한 방울 눈물로 찍어 보내고 남은 술을 더 따라드렸다.
"아버지. 오늘 엄마 생일인데요. 같이 즐겁게 잘 지내세요."
잔을 붓고 난 뒤에 텃밭을 살폈다.
2년 전에 심은 매실나무는 모두 죽고 한 그루만 남았다.
작년에 송아지가 그리 못살게 굴었더니 뿌리내림이 좋지 않았나보다.
그래도 두 그루가 살아있었는데 올해 가뭄이 심해서인지 한 그루가 죽은 느낌이 든다.
나무 주변에 있는 덤불과 풀을 제거하고 났더니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어머님, 아버님 따라드리고 남은 마지막 막걸리로 목을 축이니 더 없이 꿀맛이다.
아까 쏘인 넓적다리는 제법 통증이 온다.
제대로 쏘인 것 같다.
다시 묘소 주변에 풀을 베고 뽑고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지네 때문에 깜짝 놀랐다.
지네가 작았으면 잡지않았을텐데 이 놈은 제법 크다.
그래서 막걸리 병에 잡아넣어 가지고 와서 집에 걸어 놓았다.
나중에 약할 때 있으면 사용하려고.....
그러면서 묘한 생각이 든다.
'엄마가 나 혼내끼려고 벌침 놓고 또 아플까봐 지네를 약으로 쓰라고 주는 것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렇게 무덥던 여름 햇빛도 구름에 가려지더니 약간의 비를 뿌려주었다.
메마르며 달구어져 있던 대지는 약간의 비로 생기가 도는 듯 하다.
이 소나무 숲은 내가 살던 영그렁 솔밭 숲이다.
기솟골이라고 불렀는데 동고사를 지내던 곳이다.
어릴적 이 솔밭에서는 그네를 탔고 겨울이면 횃불 놀이를 위해 소나무 뿌리를 자르기도 했던
곳이다.
그러다 겨울 동고사 지내는 날이 오면 새벽녁 남은 음식을 먹기 위해 갔던 곳이다.
어둠이 무서워 나는 가지 않았지만 겨우 남은 음식은 대추, 밤 몇 톨
그 역시도 겨울 긴 밤을 나기엔 중요한 요기거리였기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 같다.
언제가 이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의 일을 더듬어 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