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간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간다.
그 속에 일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날이다.
그동안 품안에서 지켜왔던 맏이를 저 멀리 떠나 보내는 날이다.
둥지를 떠나기 위해 날개짓 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정말로 떠난다.
슬픔이라 할지 기쁨이라할지 모를 묘한 기분이 섞여 있다.
기숙사 입실을 하기 위하여 집을 나서는 날
공주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집 떠나는 것이 뭐 그리 좋겠냐마는 새로운 대학 생활에 설레임이 가득한 탓인지
내 맘하고는 다른 것 같았다.
주저리주저리 짐을 실어보니 뒷 트렁크에 가득 찼다.
공주를 데려다주기 위하여 나, 마누라, 공주, 둘째 원종이 넷이서 밀양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막둥이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안간단다.
"누나 담주에 오는데 뭐하로 가여. 안 가여."
막둥이만 남긴체 180km를 달려 부산대학교 밀양 캠퍼스에 닿았다.
밀양시내에서 시 외곽으로 5km 떨어진 산 기슭에 대학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외관도 수려하고 깨끗하다.
정해진 기숙사에 들어가니 같이 생활할 학생은 이미 짐 정리를 하고 나간 상태다.
2인실에 각자 쓸 책상 하나, 침대하나, 옷장 하나, 공용 화장실 하나가 전부이다.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실내와 실외가 모두 깨끗하다.
한달에 30만원이 좀 넘게 들지만 원룸 보다는 훨씬 싸기에 경제적이다.
아마도 80만원이 넘는 원룸을 사용한다면 가계에 많은 부담이 될터이지만 다행이 도움을 얻어
기숙사에 입실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가져온 짐들을 풀어 정리를 할 동안
집으로 돌아갈 거리가 만만치 않기에 미리 잠을 자두려고 차로 가서 잤다.
실컨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기숙사에 들러니 많은 짐들은 정리가 다 되었고 마누라는 마무리 청소를 하고 있었다.
먼지가 억수로 많이 나왔다고 했다.
딸래미를 위해 짐정리, 청소를 한 마누라 얼굴에 개운함이 묻어났다.
이제 청소도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래도 흔적은 남겨야겠다 싶어 사진을 찍었다.
오늘부터 공주는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까이 있던 엄마와 아빠는 저 멀리 있기에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모든 것이 자기가 결정하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통이 크고 남자다운 모습이 있어 잘 헤쳐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한명을 두고 집으로 돌아오려니 마음 한켠이 애리다.
나도 이렇지만 마누라는 이상하게 아무 내색을 않는다.
"어! 안 우나? 울어. 울어." 하고 마누라를 놀리자
"왜 우는데. 안 울어여." 하면 진짜로 울지를 않는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벌써 찍어냈을 눈물인데 눈물을 보이지 않는 마누라가 위대하게 느껴졌다.
출발하면서 공주에게 당부를 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 타라. 잘 먹고 잘 지내고."
담주에 챙기지 못한 것을 챙기로 온다는 공주의 말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누라는 집에 오는 도중이나 와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감정을 추스린 것에 불과했다.
다음날 막둥이 교복을 찾으로 가자는 카톡 메세지를 받고 집으로 가니 마누라가 내려왔다.
얼굴이 좀 이상하다.
"왜 그래! 무슨일 있어."
"몰라. 자꾸 눈물이 나자나."
"왜 눈물이 나는데?"
"거실에 누워 있는데 지연이가 자꾸 옆에 있는 것 같자나."
그러면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위대한 마누라의 모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누라의 눈물을 보니 괜히 나까지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우리 공주님 가야할 길인데 놓아줘야하지 않은가.
그래야만 스스로 서는 법도 알고 세상을 헤쳐갈 힘도 키우는 것이기에.......
아무쪼록 졸업까지 아무 탈 없이 잘 지나가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