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일기

말벌집(노봉방) 떼기

청화산 2014. 9. 8. 20:30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마누라 왈

"여보! 앞집 언니가 이야기 해서 알았는데 빌라 앞 정원에 말벌 집이 있던데."

"말벌집"

"노봉방"이라 하며 약으로 쓰는데 굉장히 비싸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말벌집이 우리 빌라 정원에 자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빌라 입주민들이 주차를 위해 매일 차가 왔다갔다 하는 자리에 말벌이 보금자리를

차렸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다음 날 밤 밖에 잠시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벌집 있는 곳을 마누라 휴대폰

후랫쉬로 살피니 벌집 입구에 벌 네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벌집은 사철나무에 매달려 지은 것 같았다.

그냥 두면 이 벌집을 애들이 건드릴 수도 있고 벌에 쏘일 위험도 다분하였다.

그래서 벌집을 떼기로 작정을 하고 준비를 하였다.

일단 벌에게 쏘이지 않을 옷도 입어야 하고 머리에 쓸 망사 천도 필요하였다.

다행히 차에 실고 다니던 비옷이 한 벌 있어서 그것으로 대체하면 되었고

망사는 없어서 대형 양파자루 두개를 잘라 꿰매니 제법 폼이 났었다.

이제는 벌 구멍을 막을 작대기가 필요했다.

추석 전 날이기에 부천을 가지 않기로 한 마당에 시간은 충분하였다.

대나무를 찾으니 잘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공평가서 바르게 자란 아카시아 나무를 2미터 정도 잘라서 왔다.

벌 입구를 막으려면 작대기가 너무 가늘기에 작대기 끝에 입구를 막을 정도로

양파 망사로 딩딩 감았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에프킬라도 준비를 했다.

마누라는 쏘이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119를 불러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말법집의 희소성, 약효성 때문에 직접 벌집을 떼기로 했다.

비옷을 입고 망사를 걸치고 두 대의 차 전조등을 벌집이 잘 보이도록 켰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긴 작대기로 벌집 입구를 막았다.

이 때까지 진행이 잘 되어 쉽게 벌집을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에 실린 전지 가위를 가지고 벌집 앞에 거치적거리는 잡풀과 작은 나무들을

잘라내었다.

방해되는 것들을 다 치우고 벌집이 드러나는 순간

이거 장난이 아니다 싶었다.

사철나무 가지 가지를 연결해서 벌집을 지었기에 사철나무 가지를 잘라야 했다.

가지를 자르다 잘못되서 벌집이 깨지는 날이면 그야말로 큰 봉변을 당할 터

조심스럽게 전지가위로 사철나무를 잘랐고 양파 망을 쒸우려고 하는데 이게 뭔가?

말벌이 한마리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잽싸게 튀어 차에 탔는데 아주 여러 마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새까만 벌들을 보니 후회가 되었다.

괜히 일을 벌린 것 같았다.

밤이 9시가 넘었는데 소방서를 부르려니 그렇고 걱정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만 두는 날이면 내일 아침 거주민들에게 위험해 질 수 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끝까지 벌집을 뗄 수 밖에

이제는 시간 싸움이다.

벌이 나오면 에프킬라로 죽이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차 전조등을 껴고 조금 시간이 지나니 나왔던 벌들이 다시 벌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양파 망사를 더 쒸우니 벌들에 새까맣게 나왔다.

양파 자루 사이를 뚫고 나오는 벌들이 있어서 다시 또 대피를 했다.

차에서 구경하던 둘째가 소주를 뿌리면 벌들이 죽는다고 했다.

급히 담근 술을 물뿌리게에 넣어 벌집에다 뿌렸지만 벌들은 죽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 벌집 안에다 술을 부면 죽을지도 모르겠다.'

담금주 반병을 벌 입구에 넣고 술을 부었다.

그리고 차에서 기다리면서 전조등을 켰다 껐다하면서 벌집을 살폈다.

그러나 효과가 별로 없었다.

할 수 없이 에프킬라로 죽이기로 하고 전조등을 끈 상태에서 벌집에다 대고

에프킬라를 마구 뿌렸다.

효과가 있었다.

벌집을 건드리니 나오는데로 뿌리니 더 이상 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양파자루로 벌집을 싸서 집으로 가지고 왔었다.

혹시나 살아 있는 말벌이 있을 까봐 오자마자 자루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거의 2시간을 벌집과 씨름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벌 한테 쏘이지 않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마치고 나니 밤 11시가 되었다.

 

다음 날 추석이지만 부천을 가지 않았기에 아침에 일어나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냉동실에 보관한 말벌집을 꺼냈다.

이미 벌들은 꽁꽁 얼어있었다.

사철나무에 가로 세로 가지를 적당하게 연결하여 말벌집을 지었다.

크기는 직경 40센티미터 되는 것 같았다.

집을 살짝 뜯어보니 내부가 보였다.

벌 집 안은 3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벌집 규모를 보니 이것은 작은 벌집이었다.

벌 개체수는 아마도 200 ~ 300마리 정도 되는 듯 싶었다.

개체 수가 1,000마리 정도 말법집은 규모가 엄청 큰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벌집이 비워 있는 것은 이미 성충이 부화되어 나간 것이고

하얗게 입구가 막힌 것은 애벌레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어릴적 나는 땅벌집을 후벼서 애벌레를 후라이 팬에 볶아 먹었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이었지만 그 때 그 맛이 매우 좋았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시도를 했다.

애벌레는 그냥 후라에팬에 올리면 애벌레가 터져서 먹을 수가 없기에

일단 끓는 물에 익힌 다음 후라이 팬에 볶았다.

약간의 간을 해서 먹었는데 맛이 기막혔다.

달달한 맛이 났다.

아들 두 놈을 불러 먹어라고 하니 잘 안 먹으려고 했다.

소리를 지르니 그제야 먹었다.

아무래도 나랑 아들이 자란 환경이 다르기에 먹는 음식도 다른 것 같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아버지가 벌 애벌레를 볶아주는 바람에 먹엇던 기억은 평생 남을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가 남겨줄 추억거리가 뭐가 있겠는가?

바로 이런 것이 추억거리 아닌가?

근데 좀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

어떤 벌은 하얀 천 같은 것으로 막힌데서 자라고 있는 벌이 있는 반면에

그냥 하얀 천이 없는 벌집에서 자라는 애벌레도 있다는 것이다.

벌에도 계급이 있는 것인가?

분업화된 뭔가 있다는 느낌이 지울 수가 없었다.

말벌의 크기도 살펴보면 정말로 여왕벌 같은 크기의 벌이 있는 반면 큰 벌의 반정도 되는

벌들도 있었다.

일벌인지 알 수 가 없었다.

말벌집의 겉은 모두 긁어냈다.

에프킬라가 뿌려진 것이 묻어 있기에

겉 표면 전체를 다 긁어내고 난 뒤에 벌집과 애벌레 모두를 넣고 담금주에 담겄다.

적어도 2년 이상을 담그놓아야 약효가 있다고 하니 잘 보관해둘 참이다.

소주 4리터를 부었다.

벌써 술 맛을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이것을 다 먹어서 뭐하겠는가?

약으로 쓸 사람 한잔 나눠주는 것이 더 큰 기쁨이 될 것인데.

 

아직도 벌집을 뗄 때 그 긴장감이 남아 있다.

정말로 많이 긴장했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긴장감의 맛을 모를 것이다.

다행히 집 앞 정원에 벌집이 없어져 혹 입주민들이 쏘일 염려가 없어진 것에

기쁨을 느낀다.

덤으로 약을 얻었으니 긴장감 만큼 큰 약효가 있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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