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들

막둥이의 용기(05.05.06)

청화산 2006. 7. 5. 16:59

어제가 어린이 날이다.
모처럼 집에 있는 날이다.

어린이 날이 별거냐고 생각하고 있던 나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갈까 생각했다.

그래서 마누라한테 산에 간다고 무심코 한마디 던졌다가 호된 질책만 받았다.

12년 동안 있으면서 언제 어린이 날 똑바로 한번 한 적이 있냐고

사실 그랬다.
업무 핑계를 되고 어린이 날 같이 있어준 것이 고작 2번 정도 인 것  같았다.
그것도 제일 가까운 영신 숲에 가서 애들 그림 그릴 동안 기다려 준 것이 전부일 뿐이다.

 

오늘은 그래도 큰마음 먹었다.
문경 한국 전통 찻사발 축제가 새재에서 열리고 있어 새재로 가기로 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롱 옆에 서 있던 막둥이가 말을 한마디 하였다.

 

“아버지! 오늘은 어린이 날이니까요 제가 아버지 한번 되 볼께요.”
가만히 듣고 보니 생각이 가상하다.
‘아버지 무서워 말도 잘 못하는 녀석이 이런 말을 하다니......’

“그래! 함 해 봐라.”
“예 이놈! 손들어.”
막둥이가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 허허 웃고 말았다.

그래서 막둥이를 불렀다.
“수종아! 일로 와봐.”
내 앞에 앉히고 껴안으면서 물었다.
“예 이 눔아! 아버지가 그키 무서워 말도 잘 못하는 놈이 그런 용기가 어디서 생겼어?”
“오늘은 어린이가 어른인 날이라고 해서 그래봤어요” 
“그랬어?”
그러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얼굴을 비볐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나 자신을 뒤 돌아 보았다.
막둥이에게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아버지가 벌을 주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깊이 각인 되었으면 아버지를 벌주려 했을까?’ 
‘아버지의 위엄이 가장 클 때가 벌주는 것이었다니.......’

 

막둥이의 이런 행동으로 나는 오랜만에 아이들의 편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벌 줄 수 있는 권한 있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너무 엄한 것은 아닌지?
가장 엄한 모습으로 애들에게 각인 된 내 자신.
부끄러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나
그 탈을 벗기에 너무도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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