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차다.
섣달이 되고 눈 오는 날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음력 섣달 10일 무릎까지
쌓인 눈
막걸리를 사러 간다.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아준 막걸리 들고 가다보면 넘친다.
돈 주고 산 것인데 아까운 생각이
든다.
아버지 제사상에 올라 갈 술이지만 술 주전자 꼭지에 대고 한 모금 먹는다.
막걸리의 맛은 그렇게 알았다.
어제 농암 고향 갔다 오면서 막걸리 2병을
샀다.
은자골 막걸리다.
맛이 좋다.
마누라와 둘이 앉자 1병을 다 마셨다.
마시면서 이런 일 저런 일 이야기
한다.
그러다 보면 방해꾼이 들어선다.
머시마 둘이다.
“한번 먹어볼래?”
사양하지 않는다.
애들인데도 꿀꺽하는 목넘이 소리가 너무
좋다.
따라주는 막걸리 한 모금 먹더니만 맛있다고 또 달라고 한다.
애들이 술 먹으면 머리 나빠진다는 핑계를 대며 말린다.
우리
집 애들은 그렇게 막걸리 맛을 배웠다.
세월이 흘러도 내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
평소에 소주를 주로 먹지만 내가 좋아하는 술은
막걸리다.
난 막걸리가 좋은데 다른 사람 입맛에 맞추다보니 할 수 없이 소주를 먹게 된다.
막걸리를 먹자고 하면 나를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궁색 떨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데.
사실 소주를 많이 먹고 과음한 다음날
몸은 술에 절어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막걸리
먹고 취해 일어난 다음날은 그렇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지 않고 숙취가 심하지 않아 일상 업무에 지장 없었다.
막걸리 품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옛날은 어떤가?
술을 빨리 만들어 많이 팔아야 했기에 사람보다 돈에 욕심을 두고 술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옛날 막걸리는 많이 먹으면 머리가 아팠다.
막걸리를 빨리 만들기 위해서 카바이드를 넣고 발효시켰다고 들었다.
카바이드는 탄광에 들어 갈 때
남폿불을 켜는 회색 돌덩어리이다.
이것을 깨어 통에 넣고 물을 부으면 화학 반응으로
아스틸렌 가스가 발생하는데 불을
붙이면 노란황색 빛이 난다.
카바이드는 화학 반응시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로 인해 막걸리가 빨리
발효된다고 한다.
그것뿐인가?
관광지의 동동주는 소주와 섞어 만들어 많이 취하고 머리가 매우 아프다.
그러니
진짜 동동주인지 묻는 것이 기본이다.
진짜라고 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 동동주를 먹을 때면 술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막걸리나
동동주를 좋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다 친구를 만나 상가 집 다녀오는 길
목이 말라 무운 고개 밑 막걸리 집을
들렀다.
갈증이 있어 그런지 몰라도 막걸리 맛이 매우 좋았다.
진실한 막걸리를 그리워하다 좋은 막걸리를 만난 것 같았다.
그
다음 농암 다녀오다 막걸리를 사서 집에 와서 먹었다.
역시나 맛이 좋았다.
이제는 막걸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요즘은 막걸리 예찬론자가 되어있다.
은자골 막걸리는
많이 먹어도 머리 아픈 줄 모르고 꺼어억 하는 트림도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의 입맛에 맞는 막걸리
이 맛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입맛이 바뀌어
세월의 각박함이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어도
세상의 한을 한 사발 막걸리로 풀어내는 그 맛을 안다면
아마도 조상 혼이 담긴 손맛은
계속해서 흐를 것 같다.
탁배기 한 사발을 든다. 술잔에 어린다.
탁배기 한잔에 세상 시름 홍조로 불사르며 사셨던
아버지
나의 먼 기억 속에서 성큼성큼 오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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