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마누라 생일이다.
미역국을 손수 끓여줘야 하는데 일찍 들어가긴 힘들 것 같다.
야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나가는 길 소주 딱 1병으로 약속하고 술을 먹으로 갔다.
그러나 술이 들어가면 대화거리도 많은 법
술자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12시가 가까워질수록 취기는 오르는데 마누라의 재촉은 높아만 갔다.
“뭐해 빨리 안 오고. 시간이 몇 신줄 알아?”
“아 !
알았어. 조금만 있다 갈게”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집에 들어간 시간이 2시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시가 넘었으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한 것 같았다.
집 입구에
들어서니 계단 발자국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주었다.
마누라는 소리에 민감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차 소리를 듣고 신랑 차인걸 알아차린다.
그런 마누라를 아파트 이웃은
매우 신통하게 생각하고 있다.
발자국 소리에 나오는 마누라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미안했지만 늦도록 자지 않고 기다린 마누라를 보니 흐뭇했다.
그러나 바로 오늘이 마누라 생일 아닌가?
“여보! 생일 축하해.
일로 와봐.”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마누라 옆으로 가자 마누라는 빨리 씻고 자라고 한다.
“마누라! 오늘 생일이지? 내가 미역국
끓여 줄게. 미역 어디 있어?”
“하이고 ! 무슨 미역국 얼른 잠이나 자시오. 지금 몇 신줄 알아?”
마누라는 미역국을 끓이지 못하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7시 30분이 넘었다.
늦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잠들기 전 미역국을 끓여 주겠노라 스스로 약속
했었는데 술에 취해 늦게 일어나게
되었으니.
벌써 마누라는 일어나서 아침을 하고 있었다.
밥솥에 김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며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역국은 없었다.
밥상에 오른 육개장 국을 보며 마누라 미역국
끓여주지 못한 것이 내내 안타까웠다.
잔소리가 쏟아진다.
내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잠을 설치다가 3시쯤 잠이 들었다고 했다.
겨우 4시간 자고 아침 준비하려
일어났으니 불만 있는 것이 당연한 법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가면서 마누라한테 말했다.
“여보! 생일
축하해.”
그러면서 마누라를 끌어안고 뽀뽀를 해 주었다.
어제 지은 죄 때문에 한 번으로 부족한 것 같아 다시 뽀뽀를 해주었다.
출근하는 길
마누라에게 너무 미안했다.
불현듯
마누라의 여러 장면들이 스쳐갔다.
마누라는 속옷이 떨어져도 옷 하나 잘 사 입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신랑 양복을 선뜻 사주었다.
나는 옷 필요 없다고 버텼지만
신랑 초라해 보이는 것 보기 싫다고 양복을 사 주었다.
내가 입는 옷들은 싸구려 옷은 아니다.
메이커 입는 옷을 입고
있다.
모든 옷들이 내가 고른 옷은 거의 없다.
마누라가 사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그러면서도 애들은 좋은 옷을 입히지
않는다.
재래시장 가서 싼 것을 사 입힌다.
그것도 몸에 딱 맞는 옷은 절대 사지 않는다.
바지를 둘둘 말아 올리는 그런 옷을
입힌다.
그런 것을 볼 때 옷 잘 입은 내가 미안했다.
얼마 전 다 떨어진 마누라 속옷을 보고 마누라를 나무랐다.
“야아 이 사람아! 옷이 거기 뭐라? 옷 좀 사 입어라. 아니 돈이 없나?
거기 몇 푼 든다고.”
다 떨어진 옷 버릴 만도 한데 아직까지 그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가?
마누라가 사준 좋은
옷으로 내 몸에서는 향기가 난다.
오늘은 마누라 몸에서 향기가 나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쑥스러워 쉽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들 둘 낳아주었다고 큰 소리
치는 마누라
행여 화난 신랑 얼굴 붉히지 않도록 조용히 숨죽이는 마누라
마음 여려 심심하면 눈물 보이는 마누라
오늘 분명 마누라
몸에서 향기 나도록 해 보겠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술 한 잔 먹고 가야 될 것 같다.
“저 어! 여자 팬티 하나 주세요.
큰 걸로요.
그리고 마개도 한개 주세요. C컵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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