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아침 나의 기분을 하늘이 아는 듯 날씨가 깜깜했다.
매일 뛰 따라 나오던 마누라는 감정이 풀리지 않았는지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지난 밤
마누라와 다툼 때문에 기분이 착 가라앉아 있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마다 포옹을 했었는데 막상 하지 않으니 그 역시도 이상했지만 가라앉은 기분 때문에
그냥 나섰다.
하늘은 내 맘을 아는 것일까?
이제껏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듯 초봄이지만 소나기를 마구 퍼부었다.
차 앞 브러시는 깊은 숨을 몰아쉬며 왔다 갔다 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가는 길이 힘들었다.
오늘 날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나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수일 전 갑자기 난 집이 있어 계약을 하였다.
나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을 원했지만 마누라는 아파트 쪽을 원했다.
신랑이 없을 때 도둑이 무섭고 여자들이 생활하기에는 아파트가 편하기 때문이라 했다.
내 욕심도 중요하지만 자식 3명 나주고 잘 길러 주는 마누라가 예뻐 보여 내 욕심을 버리고
마누라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마침 30평짜리 연립이 났고 마누라는 당장 집을 보고 와서는 계약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가멸차지 못한 살림 만만찮은 주택자금은 나를 압박하였다.
있는 돈 다 긁어모으고 몸을 담보로 4천만원의 자금을 대출하니 겨우 매매대금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비용, 이전비용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1천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야 될 것 같았다.
마침 내 놓은 집은 계약이 성사되어 자금의 여유가 있게 되었다.
나는 대출받은 자금을 조금이라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상이몽이라 할까?
마누라는 13년 만에 마련하는 집이라서 그런지 애착이 많았고 집 판돈을 새집 꾸미는데
대부분을 쓰고 싶어 하는 듯 했다.
마누라는 낮 동안 도배, 장판, 싱크대 비용을 나름대로 알아보고 난 후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시집올 때 혼수품으로 가져온 장롱은 버리고 새집에 붙박이장을 설치하고 싱크대, 조명 등
내부일체를 교체해주는데 800만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순간 가슴 속으로 마누라에 대한 실망이 가득 찼다.
‘아니! 이 사람이 깔린 빚이 얼만데 빚부터 갚을 생각 안하고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어?’
마누라의 말이 끝나자 한마디 했다.
“야! 이 사람아. 깔린 빚이 얼마나 많은데. 아니! 800만원이 그렇게 벌기 쉬운 줄 아나?
니 나가서 한번 벌어봐라. 돈 쓰기는 쉬워도 막상 모르려고 하면 등골이 빠진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자 마누라는 내 눈치를 살피며 말문을 막았다.
시간이 흘러 애들이 잠에 든 시간
마누라는 TV를 보고 있는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나한테 말 할 용기가 나지 않아 설거지 하면서 매실 술을 두 잔 먹었다고 했다.
부부는 이야기 할 때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해야 된다고 하면서 얼굴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여보! 여자들은 자기 집을 남한테 잘 보이고 싶고 또 지금 이사 가면 어차피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잖아.
그리고 살다가 중간에 수리하기도 힘드니 한 번에 하려고 한 건데 그게 뭐 나빠?”
마누라 얼굴을 보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당신 말도 맞아.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럴 여건이 되나 이거지.
한 번 봐라. 애들 내년부터 중학교 들어가지. 그러다 좀 있으면 고등학교. 대학교 가는데
지금 우리 수중에 뭐가 있나? 이 빚 갚다보면 세월 다 가는데 앞길은 생각 안하나?
남한테 잘 보여 주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나?”
결국은 싸움은 내가 이겼고 마누라는 내 뜻을 알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물러났다.
싸움은 끝났지만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서로 말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싸움을 하고 난 뒤 잠은 선잠이 되었다.
새벽녘 아직도 날이 밝으려면 시간이 한 참 남았는데 마누라도 선잠을 잤는지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내가 마누라한테 너무 한 것은 아닌지 생각을 많이 했다.
‘빚을 좀 지더라도 저질러 볼까.’
아침이 되어 밥을 먹으면서 마누라 얼굴을 보니 눈이 뚱뚱 부어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출근하여 근무하고 있는데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왔다.
도배하는 것 때문에 이사할 집에 있으니 나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이사할 집에 가니 친정 오빠가 소개 시켜준 업체에서 견적을 뽑고 있었다.
결국은 싱크대, 도배하는 것을 450만원에 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거 봐라! 이렇게 하니 돈을 350만원 아끼지 않았나. 내하는 대로 하면 뭐든 잘 될 것이니
앞으로 내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러면서도 마누라의 의견을 못 따라 준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퇴근 후 술 약속이 있어서 술을 먹고 있는데 마누라 전화가 왔다.
컴퓨터 책상을 어디에 둘 지 물으면서 책상하고 다 설치하는데 700만원이면 된다고 하였다.
술이 약인지 마음이 바뀌었다.
아침에 눈이 부어 있던 마누라 생각도 나고 해서 마누라 의견을 따라 주기로 했다.
“아이고 모르겠다. 당신 맘대로 해. 애들 책상도 해주고 붙박이장도 하고. 뭐가 되겠지.”
그러나 마누라는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줄 알고 진짜냐고 물었다.
진짜라고 이야기 하면서 인테리어 업체에 연락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집에 들어오니 마누라가 말했다.
“당신은 키는 작지만 하는 일이 똑 부러지고 나한테는 큰 바람막이야.
당신을 만나서 나는 행복해.”
“.............”
‘허허! 이 사람이 별 소리를 다하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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